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나를 묻는 밤의 독서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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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gingerna/221154942323

제 블로그(위 링크)에 사진과 서평글이 깔끔하게 작성되어있습니다.

알라딘 내 서재에는 글만 기재합니다.

 

 

 

 '나'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해 답을 해본 적이 있거나 이를 해보고 싶은데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모르는 사람, 타인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한 사람, 책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 번씩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고를 중요하다고 여긴다. 일단 우리이기에 앞서 '나'이고, 소속되기 전에 개인인 '나'로서 존중받으려면 스스로를 알아야한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제목으로 접했을 때는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시간, 새벽. 페소아라는 인물을 만나는 거면 그와의 이야기를 다루는 건가? 라는 간단한 생각이었다. 출판사인 필로소픽에 의한 설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은 제목보다 부제가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나를 묻는 밤의 독서'. 나를 묻는다. 라는 표현이 좋았다. 나에대해 항상 많은 생각을 하지만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말하라고하면 선뜻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아직도 난 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저자가 책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을 투명 유리를 통해 볼 수 있을까?'라는 설렘에서 서평단 신청을 통해 책을 읽고자했고 이 책을 받아 폈을 때, 목차를 보고는 당황했다. 설렘에서 당황으로 급격히 바뀐 데에는 소설에 흥미가 전혀없고 매번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 소설 읽기(시도를 하던 중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중간에 흥미를 잃거나 처음부터 흥미를 잃는 경우도 많았으며 최근에는 조정래 작가님의 '정글만리'를 제외하고는 소설과 연이 끊겨있었다.)를 이 책을 읽기 위해 읽어야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었다.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에 매력을 느끼는 나는 소설은 정이 안갔었다. 그런데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고 독자의 역할을 충실히 행하려면 본 책에 소개된 소설책을 읽어야할 듯한데... 하며 고민하다가 읽기를 결심하고 한 권씩 책 제목과 저자를 적어가며 책 제목을 통한 추론을 먼저 했다. 이 책은 어느 이야기가 담겨있을까를 하다보니 책이 궁금해졌고 도서관에서 대여하고자 도서코드를 작성했다. 몇 권은 도서관에 배치되지않아 책을 구매하려고 체크해두었고 서평단으로서의 임무도 행하기 위해 마감일을 지켜야하니 이 책들을 다 접하고 저자와 소통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이 의문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문득 도서관에 배치되지 않은 책의 해당 페이지를 열어 읽어보았는데 저자가 나처럼 책을 다 읽지 못한 독자도 생각해주신 덕분인지 술술 읽히고 더불어 내 생각도 살포시 얹을 수 있기에 행복해하며 이 책을 일단 읽어보고 서평을 적은 후, 소설을 읽고 그 다음에 바라보면 더 재미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금 서평을 쓰는 중에는 몇 권의 책을 제외하고는 저자의 설명에 기대 내 생각을 얹었음을 알린다.

 <위대한 개츠비>가 시작을 알린다.
 정확히는 '모든 책은, 특히 소설은 세상의 모든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문구가 총소리가 되어 진정한 시작을 알린다.

 세상의 모든 나를 비추는 거울. 낭만적인 표현임과 동시에 사실적인 표현이다. 소설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허구를 사실처럼 묘사하여 쓴 것이라고 표현한 선생님이 계셨다. 그 표현과 거울표현이 합혀지니 소설을 멀리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던 순간이었다.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즐겨하면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관심이 없었다는 것에. 알게모르게 '나'에 대해 너무 깊이 탐구하며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절제된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되었다. 물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관심을 붓고 그들보다 그들을 더 많이 알때도 있어 당사자들로부터 신기하다. 돗자리를 펴라. 라는 말도 심심찮게 받았었다. 관심에 관심을 더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니 다 보이는 것인데 정작 스스로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한다.

 

 

                                             

 '나를 묻는 밤의 독서'라는 부제에 맞게 저자는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을 독자가 스스로에게 비쳐보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개츠비를 바라보기만 하지말고 개츠비가 되보아라. 라는 문구를 던진 것과 같았던 이 부분은 아직 이런 시도를 해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앞으로 책 읽기의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요소를 획득한 셈이다. 책은 간접체험이라는 말은 그저 읽을 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나를 넣었을 때 완성되는 것이기에 말이다.

7장. 삶의 의미에 관한 말들과 태도라는 이름의 자유에 관하여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
빅토르 프랑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
로 이루어진 이 장은 세 번 반복해서 읽은 장으로 앞으로 이 책을 떠올리면 이 장의 내용부터 기억날 것 같다.
-이 장 전후로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너무 많은 글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로부터 뒤로가기 버튼을 찾게되므로 이 장을 다루기로 했다. ^^;-
'의미라는 단어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주황색 글씨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평소 궁금한 것에 대해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보고 그 단어의 일반적 의미를 찾아보곤 한다. 그러다 문득 고교시절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의 각 의미에대해 반문하기 시작했고 이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 주었다. 이를 무엇이라 칭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때 횡설수설했었는데 저자가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에서 인용한 문구가 이를 지칭하는 듯하다. '의미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발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들도 누군가에게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생각해보고 타인의 생각을 들을 필요도 있는 법이다. 이 문구는 내 마음에도 쏙 들어 수첩에 기록되었고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대학을 갈망한다. 그 갈망의 도달지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돈'이거나 '행복'이다. 이에 대해 그 돈은 무엇을 위함이냐고 물으면 '행복을 위해?'라는 물음이 섞인 답이 돌아왔고 행복을 택한 자에게 행복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데? 라고 물으면 답을 못하거나 '돈?'이라며 말하는 주변인들을 봐왔다. 이런 질문과 답변을 들으며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친구와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행복' 많은 이들이 바라는 그 행복을 정확히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지. 행복만을 위함이면 그 감정은 그 목표를 가는 길에도 간간히 느낄 수 있는데 그럼 목표에 도달했다고 봐도 되는 것이 아닌지 등으로 여러 생각을 했었고 어느덧 이 또한 과거가 되어 '했었다.'라고 표현되는 지금 오랜만에 이 추억을 돌이켜 준 부분이었다
타인에게 의존하고 타인에게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가꾸고자 정작 자신은 가꾸지 못하고 가꾸기에 앞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작사, 작곡하여 지휘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건 충고도, 조언도 아닌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툭 던져주고 지나가고 싶은 말이다. 아직 나 또한 이 일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º 본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를 통해 서평단으로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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