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화와 중국화, 두 과정을 논할 때 공히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창의적 융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들은 인도문화와 중국문화를 단순히 받아들여 자신들의 국가와 사회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기보다는, 선택적으로 수용하고(adopt) 변용해서(adapt) 자신들의 토착문화에 접목했다.
일련의 동심원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만달라‘는 힌두-불교에서 우주 질서를 표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만달라 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동심원의 중심 세력과 주변 세력들이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를 바탕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인력 통제가 수월하지 않은 전통 동남아시아 사회에서는 지배-피지배 관계를 바탕으로 계급과 질서 즉 계서(階序)가 강한 피라미드 체제가 뿌리를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는 일방적이기보다는 쌍무적인 성격을 띠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이길 수 없었다. 죽은 자는 이미 죽었기에 죽일 수가 없었고, 죽어 널브러지고 문드러진 자세로 산 자를 조롱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영광에 침을 뱉고 있었다. 적병과 아군의 시체가 뒤엉켰지만, 죽은 자에게는 산 자의 칼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