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를 받은 76인 중 작위를 거부 또는 반납한 김석진, 조정구, 유길준, 윤용구, 한규설, 민영달, 홍순형, 조경호, 뒷날 반일 활동과 관련되어 작위를 박탈당한 김가진, 김윤식, 이용직, 김사준을 제외하고 나머지들은 죽는 날까지 친일 협력의 삶을 살았다.
세상은 날로 화려해지는데 우린 왜 전보다 더많은 시간을 죽어라 일하는데도 입에 풀칠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걸까?
세상을 뒤흔든 역사적인 3월 1일도 어김없이 저물었다. 그런데 3·1은 마감되지 않았다. 아니, 시작이었다.
의병 출신 외에도 망명을 택한 이들이 많았다. 이상설, 이동녕, 정순만, 여준 등은 1906년 룽징춘에 터를 잡고 민족 교육을 위해 서전서숙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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