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슴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24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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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가오는 새로운 2026년을 꿈꾸며 이번 리뷰로 한해를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상동광산이라는 곳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한 텅스텐 광산. 전성기에는 최대 3만여명의 사람들이 몰려살았다던 강원도의 명동 상동읍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산업 구조가 격변하고 값싼 중국산 텅스텐들이 세계 시장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하자 결국 자연스러운 흐름에 밀려 1994년 이곳의 텅스텐 광산은 폐광되고 말았고 상동읍 역시 예전의 명성이 무색하게 전국 최소인구의 읍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렇게 한때의 어려웠던 시절에 있었던 아련한 추억으로 영원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상동광산의 흥망성쇠.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졌던 이 상동광산이 최근 30여년만에 다시 개장할 준비를 하며 조용했던 상동읍 마을 역시 오랜만에 사람의 열기로 들썩이고 있다고 합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반전되게된 이유로는 역시나 이 광산의 문을 닫게 만들었던 급변하는 국제 정세의 추이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수 있을테죠. 미중갈등과 점점 노골화되는 신냉전의 격화. 거기다 텅스텐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각종 첨단 산업들의 비중이 최근들어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국가의 목숨줄을 쥘지도 모르는 이 전략자산 텅스텐을 잠재적 적국이 될지도 모르는 일부 특정 국가에 더이상 의존할수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IMF때 외국계 기업에 헐값으로 팔려나갈 정도로 처리불가 애물단지에 불과했던 이 광산은 세계 최대규모의 매장량을 지닌 60조원 가치의 광산으로 급부상하며 30여년만에 다시 채굴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르면 내년부터 캐낸 텅스텐을 시장에 공급한다고 하죠. 그리고 이러한 폐광에 불어닥친 극적인 변화의 바람은 비단 영월의 상동광산뿐만 아니라 울진의 쌍전광산 등 소외받던 다른 폐광들에게도 크게 다르지않은 마찬가지인 상황. 그렇다면 우리가 이 들썩이는 변화의 움직임들을 통해 배우고 또 교훈으로 삼아야할 삶의 자세는 과연 무엇일까요? 작중에 등장하는 도시 황곡은 몰락해가는 흔하디 흔한 탄광 도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평생을 지하에 살며 돌을 씹어먹으며 살아간다는 전설적인 동물 검은 사슴이 살고 있다고 하죠. 광부들이 광물을 캐기 위해 그 검은 사슴이 살고있는 보금자리로 침입해 들어오면 사슴은 광부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뿔과 이빨을 그들에게 순순히 바칠테니 그 평생 본적없는 찬란한 빛의 세계로 자신을 안내해 데려가 달라는 것. 하지만 채굴의 시간이 끝나면 광부들은 불운한 사슴을 홀로 내버려둔채 오직 그들만이 다시 빛의 세계로 돌아갈 뿐이고 그렇게 사슴은 어두운 지하 세계에 남겨져 쓸쓸히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죠. 마치 생명력넘치던 상동읍이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에 밀려 소멸 직전까지 갔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발전과 효율을 명목으로 그간 무수히 사라져간 수많은 밑바닥의 사슴들이 존재해왔었습니다.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그 모든 흔적들을 망설임없이 활활 불태우며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가지만 자신도 데려가달라며 울부짖는 그 목소리에는 그 누구도 관심가지거나 귀기울이지않는. 어쩌면 그 광부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다는 전설속 동물 검은 사슴이라는 존재는 유효기간이 정해져있던 자신들 광부의 신세를 알게 모르게 한탄하던 모습이 아닌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앞선 폐광들의 극적인 귀환의 사례처럼 쓸모있다고 실컷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막상 더 뽑아 먹을게 없을 것 같으니 매몰차게 가장 밑바닥에 자신의 삶을 바치던 존재들을 내버려두고 다른 새로운 먹을거리로 금방 떠나버리는 그 자본주의에 지극히 충실한 행위는 이제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단지 도덕적인 의무나 책임의 영역만이 결코 아니라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판단하고마는 그 '쓸모'라는 가치는 밑바닥의 사슴도 광부들도 그 누구도 함부로 가늠할수없는 신묘한 경지의 영역이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처럼 최소극대화의 법칙을 새삼 다시 주목해야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비효율을 감수하면서도 내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투자하는 만약의 보험도 결코 아니며 대책없이 돈만 줄줄 새는 포퓰리즘 정책도 또한 아닌 그 어떤 밑바닥의 자원들도 멀지않은 미래에 충분히 위로 올라가 돌고 도는 자연스러운 자원순환의 흐름에 이미 올라타 있기에! 미리 쓸모없다며 매몰차게 검은 사슴을 내던져버리고 떠났는데 다시 정작 그 모두가 원하는 주목과 기회의 순간이 돌아와 찾아갔을 때 사슴이 죽어 없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막심한 손해이지 않겠어요? 指鹿爲馬. 저 사슴은 언제든 다시 세상을 향해 우렁차게 날아오를 그 새빨간 붉은 말이 될수도 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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