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뷰대회]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역시 이벤트의 힘을 빌려 다시 이 서재에서 조촐한 글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대략 어떠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계시나요? 와! 인디아나 존스쯤으로 대표되는 그 화려했던 고대문명의 으리으리한 유물들을 건져올리는 그러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지 않으신가요? 하지만 고고학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시간들 속에서 이러한 황금빛 찬란한 순간은 평생 한번 마주해볼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마주하는 대부분의 작업 현장의 모습은 끝없이 쏟아지는 그 특색없이 똑같아 보이는 토기들과 벽돌들을 분류해내고 다시 식별표를 부착해 기록하는 지루한 반복 작업의 연속. 저도 박물관 수장고에서 잠깐 일을 좀 거들었을때 질리도록 목도한 현장이고 이 현실에 환상이 깨져 급기야 꿈을 접고 발길을 돌리는 관련 종사자들도 정말 많이들 봐왔지만 그나마 이렇게 기록이나 남겨 연구할수있는 경우는 고고학이란 분야에서 참 행운아라고 볼수 있을테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또 연구를 계속 반복하더라도 대략적인 역사의 흐름은 커녕 그 남겨진 문자조차 단 한글자도 해독하지 못하는 깜깜한 케이스들이 여전히 많고 심지어 어떤 학자분은 죽기 전에 이 문명에서 살았던 단 한사람의 이름이라도 불러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구구절절하게 털어놓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렇다하여 우리가 과거의 흘러가버린 그들과의 대화를 그만 멈춰도 좋은걸까요? 제아무리 속편하게 무시하고 아예 다 때려부숴 리셋하려 하더라도 그들이 남긴 흔적은 질리도록 따라붙어 우리에게 그들이 이 땅위에 분명히 살아숨쉬고 있었음을 알아달라며 외치고 또 외칠테죠. 그리고 그 모래 속에 파묻힌 의미와 이름들을 되찾는 과정은 비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특히 일개 한 개인의 영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의 저자 수잰 스캔런의 지나온 삶도 오래전 잠든 그 화려했던 고대문명들처럼 살아올 의미를 잃어버린채 외롭게 갇혀있던 시간의 연속이었죠. 특정 음식을 제외하면 입에 들어온 그 모든 것들을 토해내기 바빴던데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도 없이 그저 시한폭탄이 당장 터지지않길 바랄 뿐이었던 꺼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촛붙같은 삶. 급기야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지경에 이르자 저자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지만 그 살기위해 가둔 치료의 공간은 오히려 자신의 그나마 드러나있던 삶도 철저히 무시당하는 암흑의 무덤 속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개별적인 증상이나 지나온 삶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않은채 그저 그 수많은 피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가능한 일반 이론이나 학술적 보고에 열을 올릴뿐 정작 그들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그 모든 환자들이 간직한 사연많은 스토리는 흔하디 흔한 케이스 1, 2로써 서류더미 속에 파묻혀 있곤 했죠.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숨쉬는 존재이며 이 땅 위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입증하기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지나온 삶에대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탐닉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봤던 과학수사 미드에 그런 장면이 등장하죠. 오늘날 다룰 법적인 범죄 케이스는 아니지만 어찌됐든 아주 오래전 살았던 고대인으로 추정되는 유해. 거기 등장하는 한 젊은 과학자는 어떻게든 빨리 사인을 파악해 다른 급한 사건으로 넘어가고 싶어했지만 그를 전사로서 예우해줘야 한다는 머리에 꽃밭만 가득찬 꼰대의 반대로 인해 자꾸만 부검이 지연되고 맙니다. 결국 폭발한 과학자는 그 꼰대와 계급장떼고 정면충돌하고 말지만 사실 그 과학자의 의견대로 빨리빨리 부검을 속전속결로 해치우고 끝낸다면 우리는 그 고대인의 신체정보나 사인 정도만 정확히 밝혀낼수 있을뿐 그의 당시 사회적 위치나 가치관같은 섬세한 자투리 정보는 영원히 밝혀내지 못할지도 모르죠. 그런 TMI 알아봤자 뭐 대단한게 있을까싶지만 앞선 한 사람의 이름이라도 알고싶다는 학자의 절규를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사소한 정보들이 모이고 모여 의외의 실타래를 풀어낼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흘러간 그 어느 무엇에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자세를 잃지말야만 합니다. 그것이 고고학의 영역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의 영역이든 말이죠.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진 단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유명한 시의 한소절처럼 언젠가 나에게 꽃이 되어 다가올 그 결정적인 향기를 상상하며 오늘도 나와 대화할 문학의 녹이 낀 어느 왕조의 유물급 구리 거울을 천천히 들여다보는건 어떨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