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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의 세상 - 제1회 사회평론 어린이·청소년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 ㅣ 사회평론 어린이문학 1
정설아 지음, 오승민 그림 / 사회평론주니어 / 2025년 7월
평점 :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이벤트의 힘을 빌려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1942년 이제 막 독소전쟁이 발발하여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구 잡아가던 살벌한 분위기의 소련 모병소. 하지만 그 인간의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 마귀들의 공간에 스스로 자원입대하겠다며 찾아온 앳된 외모의 소년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그레고리 페트로비치 불라토프였죠. 엔지니어의 꿈을 꾸던 평범한 소년의 인생을 이렇게 스스로 총을 쥐게할만큼 급격하게 뒤바뀌게만든 계기는 역시나 지금 한창 난리인 전쟁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최전선에서 안타깝게 전사하고 말았고 가족들은 독일군에게 모두 학살. 그렇게 홀로 남은 소년은 복수를 다짐하며 모병소에 들어서 최전방에 보내줄 것을 당당히 요구하지만 그 냉정하던 모병관들조차 망설일 정도로 그의 나이는 너무나 어렸죠. 하지만 16세 소년 페트로비치는 마지막까지 고심하던 모병관의 승인을 받아 마침내 150보병사단에 배속되어 독소 양측이 서로를 죽고 죽이던 스탈린그라드의 지옥으로 향할수 있었고 이후 쿠르스크 전투, 바그라티온 작전, 오데르 공세 등 여러 굵직한 전투들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기어코 가증스러운 적들의 수도 베를린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사단은 베를린 제국의사당에 붉은 깃발을 게양한 아주 유명한 명장면을 연출하며 2차대전 유럽전선의 마침표를 화려하게 찍게되지만 그 과정에서 처음의 사단 인원 중 보충된 병력을 제외한 최후의 생존 인원은 단 18명. 그리고 우리의 페트로비치도 그중 한명으로서 당당히 베를린 승전 사진에 얼굴이 실리게되고 이후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은 소년은 소비에트 영웅훈장 수여와 함께 마침내 그리웠던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죠.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매일매일을 술에 빠져 살던 소년은 영웅훈장이 무색하게 여러차례 민망한 사건사고를 저질러 보다못한 주코프 장군이 탄원서를 써줄 정도였지만 끝내 1973년 직장이던 공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150사단 최연소 생존병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겁니다. 흔히들 누구가와 영원히 이별한 슬픔을 맞이하면 그 고통을 잊어버리기위해 몸을 바삐 움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장은 그 정신없을 정도로 바쁜 업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상실의 슬픔을 잠시 다른 곳으로 치워둘수 있을지 몰라도 그 잠시 치워둔 슬픔의 파도는 언젠가 반드시 거대한 해일이 되어 빠르게 우리의 마음속을 잠식해나갈테죠. 그 어떤 명예와 훈장도 뒤늦게 몰려온 상실의 고통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젠가 맞이할 상실의 아픔을 바로 직시해야만 합니다. 이번 작품 속 이루의 형과 어머니가 애써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했던 것은 비단 그들이 냉정하고 차가워서는 결코 아니였을 겁니다. 그 슬픔이 너무나 크고 괴로웠기에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괜찮다는 그 상징적인 행위들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집착해왔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죽은 아버지가 죽살귀신이라는 애매한 존재로 부활하여 이루의 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그 슬픔과 고통은 언젠가 반드시 확정적으로 죽살하여 그들을 잔혹하게 덮쳐올 겁니다. 그것은 살아 숨쉬는한 결코 도망칠수없는 필멸자의 숙명.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건 그 어떤 소중한 것도 언젠가 사라질수 있다는 숙명과 제대로 마주하고 소중한 이를 영원히 떠나보내고 애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것 뿐입니다. 그리운 아버지가 다시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이루가 그 모처럼 죽살한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위해 영원한 작별의 문을 찾아 바닷가로 향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죠. 사랑했기에 오히려 그 소중한 이를 영원히 떠나보낼수있는 아픔과 각오와 당당히 마주할수있는 법! 어찌보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않은 아픔과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 따뜻 찌릿한 이루의 이야기를 통해 어리다고하여 결코 멀지않고 가볍지않은 죽음의 이미지와 무게를 우리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받아들일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