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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도 2 - 봉오동의 그들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역시 이벤트의 힘을 빌어 다시한번 돌아왔습니다. 2014년 에스토니아. 그곳에서는 아주 특별한 한 노병의 장례식이 아주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되고 있었죠. 에스토니아 군계급으로 따지자면 일개 대위에 불과한, 그것도 실제로 다 복무한 것도 아닌 명예직의 개념으로서 후에 추서받은 한 예비역 군인의 장례식일뿐이었지만 무려 국방부 장관의 조문부터해서 수많은 군관계자들이 참석해 떠나가는 노병에대해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표시했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도 그를 에스토니아의 영웅으로 칭송하며 사망한 노병에대한 추모 분위기에 동참했죠. 하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적 규모로 진행된 이번 장례식과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에 강렬하게 반발하며 심지어 유럽인권재판소에 관련된 자들을 제소하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내비쳤으니 그들의 정체는 바로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과 그들의 본국 러시아. 한 노병의 사망소식을 두고 이렇게 극명하게 두편으로 갈린 근본적인 갈등의 이유는 이번 장례식 선두에 선 노병의 훈장 목록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생소한 훈장들 가운데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수가 없다는 선명한 검은색의 십자가 모양의 훈장. 그렇습니다. 노병 하랄드 누기섹스의 정체는 바로 과거 2차대전 시절 독일군 친위대로 복무한 에스토니아인 자원병이었던 겁니다. 그가 젊은 청년이던 시절의 조국 에스토니아는 불과 얼마전 기습적으로 진행된 소련의 침공으로 허무하게 멸망해 병합당하고 말았고 얼마뒤 다시 그 비극의 땅으로 가증스러운 소련군들을 몰아내며 새로운 강자 독일군이 진격해오자 그는 선택하기로 합니다. 독일의 군복을 입고 소련군과 맞서싸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해내기로. 그는 험난한 동부전선의 전장에서 맹활약해 아무나 못받는다는 철십자훈장까지 수여받으며 ‘훌륭한’ 에스토니아인의 본보기로서 여러번 선전되었으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다시 전세가 역전되며 독일의 패망이 다가오자 그는 파르티잔들에게 포로로 붙잡혀 소련으로 강제압송당하고 말죠. 하지만 불행중 다행인지 소련 치하에서 반역자이자 파시스트에 불과했던 그는 총살형을 당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수년의 혹독한 시베리아 노역 끝에 살아남아 무사히 고향에 돌아올수 있었고 마침내 소련이 붕괴되고 조국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되찾자 이렇게 예비역 대위 계급까지 추서받으며 전국가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시대의 불운을 한몸에 떠안은 비운의 영웅으로 칭송하기에는 여러모로 찝찝한 점이 많습니다. 제아무리 소련이라는 최대의 적이 바로 눈앞에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인류사 최악의 범죄를 자행한 나치 정권에 부역한 친위대 소속이라는 것. 게다가 설사 독일이 승리해 소련을 완전히 패배시킨다 하더라도 그가 원하던 조국 에스토니아의 완전한 독립을 향한 시나리오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게네랄플란 오스트. 독일이 승리했을시 현지주민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해 그 빈땅을 모두 독일인들이 차지하게 만든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계획으로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에스토니아인의 절반 역시 미리 학살의 대상으로 올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노병의 친위대 복무기록은 어쩔수없는 약소민족의 차악의 투쟁이 아닌 그 속내도 모르면서 제발로 늑대의 입안으로 들어간 어리석고 순진한 과오로 해석될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그 당시 일개 청년에 불과하던 그에게 독일이 승리했을시의 미래나 세계정세같은 것을 모두 예상하고 판단한 다음 그 길을 선택했어야 한다며 질책하는것 역시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지난날 우리 사회를 쓸데없는 갈등과 분열로 몰고갔던 홍범도 장군에대한 논란을 떠올려 봅시다. 우리의 지난 과거사가 소련과 공산주의에대한 기억이 그닥 좋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 트라우마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는 시기는 1945년 해방 이후. 그러니 제아무리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뼛속까지 새빨간 철저한 공산주의자라 할지라도 1943년에 생을 마감한 그에게 이후의 비극에대한 원죄를 하나하나 따져물을수는 없을테죠. 게다가 홍범도 그 자신도 투철한 공산주의자가 아닌 그저 평생을 애매한 위치의 경계인으로 살아올수밖에 없었던 상처많은 투사에 지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 쓸데없는 이념 논쟁의 터널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길고 긴 터널에서 간단하게 벗어나는 방법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위인이라고 알려진 인물들에대해 전혀 오류도 없이 살아온 청정하고 완전무결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대체로 그런 인식들은 사실에 부합하는 경우들도 많으나 위인들도 사람이고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마침내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인생역전의 사례도 무수히 많기에 이런 대중의 완전무결한 인식에 오류를 일으키는 감추고싶은 흑역사들과 마주하다보면 앞선 홍범도 논란같은 걷잡을수없는 흑화의 길로 빠져들고 마는 걸테죠. 그러니 우리는 이제라도 제대로 인지해야만 합니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기질을 타고난 선택받은 인물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모든 오류와 한계를 이겨내고 마침내 극복해 위대한 역사를 써내려간 진정한 인간승리의 화신들이라는 걸. 이번에 소개할 소설 범도라면 그 인식의 전환을 제대로 이끌어낼만한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역사적 고증에 철저한 무오류의 저작물이라고 할수없습니다. 그도 그럴게 이 작품은 엄연히 픽션인 소설이니깐요.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기존의 딱딱한 저작물들에선 찾아볼수없었던 시행착오 가득한 한 고독한 인물이 그럼에도 도저히 포기할수없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위대한 영웅의 가시밭길을 제대로 목도할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배고파서 어쩔수없이 군에 몸을 담았고 나중에는 옆에 쓰러젼 전우들의 복수를 위해 총을 잡았지만 점점 격동의 현장에 서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저 눈앞의 오늘을 살기 바빴던 청년의 가슴 속에 독립이라는 가슴뜨거운 목표 하나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것이 비록 그리운 고국을 떠나 소련이라는 낯선 땅에서 생을 마감하고야마는 평생 이룰수없는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직업은? 의병. 입국 목적은? 고려 독립. 비록 그 자신은 그렇게도 원하던 조국의 독립을 끝내 보지못한채 외로운 이국 땅에서 눈을 감고 말았지만 마침내 조국의 독립도 실현되고 그의 묘도 그리운 고국으로 이장된 지금, 배부른 후손들의 쓸데없는 논쟁은 잠시 제쳐두고 그때 그 서릿발 칼날진 그위에 서야만했던 한 외로웠던 포수의 비좁은 시야 속으로 다시 되돌아가보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