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끼의 메소포타미아 신화 1 홍끼의 메소포타미아 신화 1
홍끼 지음 / 다산코믹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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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역시 이벤트의 힘을 빌려 이렇게 홍끼의 메소포타미아 신화 1권에대한 리뷰글을 쓰게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전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에는 성혼례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지상의 지배자인 군주가 일년중 특정한 기간이 되면 지구라트 위의 신방에 올라 그곳에서 기다리고있던 여사제와 마치 신혼을 즐기는 부부처럼 줄곧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의 눈으론 도저히 이해할수없는 관습. 그 어떤 관습도 처음엔 다 그럴듯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을테니 이 성혼례의 풍습도 오랜기간 반복되어 유지되어온 이유가 분명 존재했을 겁니다. 신민들에게 왕권과 신권의 결합을 적나라하게 보여줄수있는 일종의 극적인 이벤트였을수도 있고 단순히 군주의 사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그럴듯한 상황극이었을수도 있을테죠. 실제로 이러한 성혼례를 통해 탄생한 아이들은 여신의 아이로 여겨져 대부분 신전에서 생을 마감하곤 하지만 드물게 이러한 아이들 중에 유력한 왕권의 후계자로 지명되는 경우 역시 확실히 존재하지 않던가? 그 유명한 길가메시도 그렇고 자신을 여신의 아들로 칭하는 군주가 간혹 존재하긴 했었지만 그러한 사례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많은 군주들중 극히 일부의 사례.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속세의 권력을 거머쥔 신의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성혼례의 관습이 그저 엄숙하고 신성한 의식의 절차가 아닌 군주의 사적 감정이 개입된 지극히 인간적인 사정의 결과물이란 해석도 가능하게하지 않을까? 길어봐야 일주일.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왕은 뒤도 돌아보지않고 지구라트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물론 왕에게는 엄연히 부인이 존재하고 후계자도 이미 정해진지 오래지만 다음 성혼례의 기회를 통해 다시 이 특별한 여사제와 얼마든지 충분히 재회할수 있을테고 어쩌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신의 아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는 날을 어렴풋이 꿈꿀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냉정히 이 낭떠러지같은 계단을 걷고 또 걸어 내려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지상으로 다시 내려온 왕의 귀에 들리는건 대기하던 도시민들이 부르는 두무지의 노래. 한때는 여신 인안나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나 그 달콤함도 무색하게 차갑게 식어버린 여신의 변덕으로인해 일년의 반을 저승에서, 또 일년의 반을 이승에서 보내게된 비운의 양치기신을 위한 노래였죠. 고대 중근동에서 죽은 자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의미로 오래도록 사랑받은 신 두무지. 꽃길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잠깐 한눈 판 사이 자신의 행복의 근원이던 여신의 미움을 사 버림받은 그 바람둥이 신을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어째서 그렇게 애정하고 추모해왔던 걸까요? 어찌보면 스스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버린 두무지의 이야기는 신답지 않은 불완전한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죠. 하지만 희박한 확률이지만 세속적인 권력을 차지하기도했던 신의 아이들처럼 인간 세상은 항상 이상적인 법칙으로만 돌아가지 않는 법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비록 대놓고 내보이지는 못하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관계를 포용하고 대표하는 무언가를 항상 원하고 찬미하고 싶어했을 겁니다. 그것이 비록 포장된 뻔한 불륜이고 진흙탕이 예고된 돌발변수라 하더라도 신은 그러한 예외들도 항상 감싸안아주어야 하는법!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읽는다는건 오랜 세월 고대인들이 성혼례의 관습을 기억하고 두무지의 비극을 애도해왔던것처럼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들을 이해하고 사회의 틀안에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엄격하고 근엄하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곧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이벤트로 가득찰 너무나 인간적인 신들의 이야기.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사는건 똑같다는 그 변치않을 대전제를 이번 홍끼님의 매력적인 작품을 통해 다시한번 분명히 확인해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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