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꿈에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를 심음으로써 그 사람의 미래의 일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설정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 놀랍게도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피셔 씨의 미래가 걱정되는 건 남일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돔 코브가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미래에 간섭하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악당이 할 만한 짓인 거다.

다만, 로버트 피셔는 사업상으로는 많은 것을 잃을 지 몰라도,

코브가 인셉션한 꿈 덕분에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사랑은 회복한 걸로 그려진다. (물론 자신만의 제국을 새로 세우는데 성공해 아버지보다 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과연, 아버지의 진심은 뭔지 차치하고라도, 이걸로 로버트 피셔는 한동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게 가장 괜찮은 결말인 것일까?

 

이 영화 전체가 누군가의 꿈이냐에 대한 논쟁은 이미 많이 논의되었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이 영화 줄거리가 보여진 그대로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이 보고 믿는 게 중요한가 이다.

로버트 피셔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 또 진짜 유언이 무엇인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주니어가 을 통해 받아들인 아버지로부터의 화해 메세지와 자신의 뜻대로 제국을 이끌어가라는 유언만이 분명한 걸로 남았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혹은 행복한 결말인 것인가?

내 꿈을 통해 내 미래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여도 행복하게 느껴지면 다 괜찮은 걸까?

게다가 꿈에 침입한 의도가 사이토가 말한 것처럼 사업적 이윤 추구 때문인데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

 

또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약 이 꿈이 인셉션 당한 것을 로버트 피셔가 도중에 알아차리고 깨어났다. 그렇다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라는 유언까지 무사히 듣는다. 다만 거기에는 아버지로서의 화해와 사랑의 메세지는 일절 없고 오직 재산을 불려서 피셔 가의 제국을 그대로 유지해라는 사업상의 유언만 있을 것이다. 따라서 로버트의 마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괴로운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이토의 사업 계획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돔 코브와 그의 팀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로버트의 꿈의 세계는 안전하게 지켜질 것이다...

 

과연, 인셉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기술일까 아니면 인간을 조정하기 위한 기술인 것일까?

만약 머지 않은 미래에(어쩌면 현재에도!?) 이런 식의 꿈의 간섭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과연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아주 깊이 신중히 말하다.

그리고 만약 내 꿈의 어떤 한 부분을 바꿈으로써, 내 먼 미래의 큰 부분이 아주 달라지게 된다면, 그것도 꽤 긍정적으로 달라지게 된다면(물론 이 확률은 랜덤이다. 로버트의 꿈에 침투한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와 감동의 메세지를 전부 계획하고 들어간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당신의 꿈을 인셉션하고 싶은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나라면, 글쎄?

 

난 나를 지키고 싶다. 내 무의식만큼은 나만 아는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갑자기 퓨처 워커가 떠오르는다. 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절반은 트릭이기 때문에 어떤 장치였는지는 미리 언급하지 않겠다. 

일단 40자 비평에도 말했던 것처럼, 소설 중반까지 도대체 범인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독자도 그리고 책속의 주인공도 같이 헤매게 된다. 주인공들이 번갈아 가설을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일련의 과정이, 독자도 같이 고민하는 것과 맞물려서 공감대를 꽤 형성한다.  

그런데 나한테는 아쉬웠던 게, 

이 트릭을 파헤쳐 가면서 범인을 마지막까지 구석으로 몰고 가는 전개 방식이면 보다 몰입도가 강했을텐데, 범인의 과거지사를 설명하면서 왜 범인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풀어서 말하다 보니, 결국 숨가쁘던 호흡이 탁 풀리고 마는 구조가 되었다는 거다. 게다가 범인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를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바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차라리 긴다이치처럼 마지막에 트릭은 바로 이것이다! 라고 보여준 뒤, 범인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던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 해주는 게 소설 마지막까지 독자의 감정을 흔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범인이 좋은 머리를 가지고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두 주인공이 꽤 매력있어 계속 시리즈물로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특히 주인공 남자의 집의 보안 장치-현관 자물쇠, 창문잠금장치, 보안 카메라 등- 에 대한 상당히 치밀하고 상세한 설명은, 우리집 잠금 장치도 안전하지 않다는 의심마저 들게 하기 충분했다. 또 여자 주인공에 대한 은근하면서 꾸준한 관심은 어딘지 레밍턴 스틸의 두 남녀 주인공을 연상케 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최근에 13계단과 그레이브 디거를 봐서 그런지 유리망치의 장점 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눈에 띄는 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 트릭 밝히는 재미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생에게도 권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범죄 트릭만으로도 별 네 개는 받을 만함. 중반까지 주인공들과 같이 헤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흑색의 수수께끼 -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 18인의 특별 추리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90
나루미 쇼 외 지음, 유찬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무거운 소설들이 많다. 다른 수수께끼 시리즈보다 끝까지 읽는 게 힘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엑스페리먼트 - The Experimen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처음 봤을 때, 친구와 호기심에서 고른 영화였다. 

아마 당시 엑스페리먼트가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왠지 스릴러 호러 영화 같다고 해서 골랐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성인이긴 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참...  

줄거리는 한 대학에서 가상의 상황-감옥이라는 상황을 설정해서, 간수와 죄수로 팀을 나눔-에서 인간의 사고 방식과 행동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지원자들에게 실험한 것이다. 처음 실험을 시작했을 때,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하게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답게 돈만 받으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껄렁하게 행동하는 사람, 착실한 직장인 답게 주어진 역할에 끝까지 충실히 연기하는 사람, 잘 따르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은 부분에서는 강하게 저항하는 사람, 그리고 점점 더 자기 역할에 몰두해 격렬하게 변해가는 사람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를 수록, 자유로운 실험 분위기가 아니라 실험에 몰두하다 못해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제압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실험에 너무 대강 임할까봐 걱정했던 연구진의 걱정과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게다가 극한 상황에 치닫기 시작하는 실험을 보고 멈추자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연구진들은, 사람을 사람이 아닌 실험실의 모르못으로 보는 사이코 과학자들의 모습-아마 731부대가 연상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근데 이 과정들이 영화답게 극적이긴 했지만,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황당무계했다면 요즘같은 민주주의 사회에 어떻게 이럴 수 있겠냐며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었으련만.

결국 영화가 진행될수록 친구와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다음 장면 보는 게 힘들어지고, 답답하면서 짜증도 나고 화도 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끌림이 계속 있었다. 지금도 잊고 싶지만 몇몇 장면들과 전체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걸 보고 느꼈던 마음 한 구석의 묵직한 불편함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건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뒷이야기였다. 

맙소사. 

제발 설정극이길 바랬는데, 굉장히 현실적이고 공감가는 영화-그래서 더욱 보기 불편했던 영화-로fiction이길 바랬는데, 나와 친구의 바램을 무참히 깬 가장 슬픈 진실이었다. 

결국 이 영화를 보고 친구와 주고 받았던 토론 아닌 토론의 결론은 이거였다.

"만약 지금 이 실험을 다시 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글쎄...? 아마 똑같지 않을까? 아니면 더 처참하게 싸우거나." 

"그래. 나도 사실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이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평범한 내 동생, 오빠, 이웃 사촌, 이종사촌 형이 진압봉과 방패를 들고 시위에서 나와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변하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