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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페리먼트 - The Experimen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처음 봤을 때, 친구와 호기심에서 고른 영화였다.
아마 당시 엑스페리먼트가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왠지 스릴러 호러 영화 같다고 해서 골랐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성인이긴 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참...
줄거리는 한 대학에서 가상의 상황-감옥이라는 상황을 설정해서, 간수와 죄수로 팀을 나눔-에서 인간의 사고 방식과 행동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지원자들에게 실험한 것이다. 처음 실험을 시작했을 때,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하게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답게 돈만 받으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껄렁하게 행동하는 사람, 착실한 직장인 답게 주어진 역할에 끝까지 충실히 연기하는 사람, 잘 따르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은 부분에서는 강하게 저항하는 사람, 그리고 점점 더 자기 역할에 몰두해 격렬하게 변해가는 사람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를 수록, 자유로운 실험 분위기가 아니라 실험에 몰두하다 못해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제압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실험에 너무 대강 임할까봐 걱정했던 연구진의 걱정과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게다가 극한 상황에 치닫기 시작하는 실험을 보고 멈추자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연구진들은, 사람을 사람이 아닌 실험실의 모르못으로 보는 사이코 과학자들의 모습-아마 731부대가 연상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근데 이 과정들이 영화답게 극적이긴 했지만,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황당무계했다면 요즘같은 민주주의 사회에 어떻게 이럴 수 있겠냐며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었으련만.
결국 영화가 진행될수록 친구와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다음 장면 보는 게 힘들어지고, 답답하면서 짜증도 나고 화도 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끌림이 계속 있었다. 지금도 잊고 싶지만 몇몇 장면들과 전체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걸 보고 느꼈던 마음 한 구석의 묵직한 불편함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건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뒷이야기였다.
맙소사.
제발 설정극이길 바랬는데, 굉장히 현실적이고 공감가는 영화-그래서 더욱 보기 불편했던 영화-로fiction이길 바랬는데, 나와 친구의 바램을 무참히 깬 가장 슬픈 진실이었다.
결국 이 영화를 보고 친구와 주고 받았던 토론 아닌 토론의 결론은 이거였다.
"만약 지금 이 실험을 다시 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글쎄...? 아마 똑같지 않을까? 아니면 더 처참하게 싸우거나."
"그래. 나도 사실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이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평범한 내 동생, 오빠, 이웃 사촌, 이종사촌 형이 진압봉과 방패를 들고 시위에서 나와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변하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