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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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아름다운 부분(?)들은 이미 소문이 자자하니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아쉬운 대로 압축해서 감상을 말해 보자면, 모두 훔쳐서 간직하고 싶은 장면들이라고 할까.
이따금 말 그대로 숨쉬는 것을 잊고 그의 팔 움직임, 절제된 액션, 멈춰 있는 실루엣, 연약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정제된 얼굴선, 정장입은 완벽한 남자모습 등등에 홀리기도 했으니까. 그를 쫓는 카메라는 냉정한 시선으로 그의 아름다운 액션을 정확하게 담아냈으며, 매우 현실감 있게 진행되는 달리기, 무술, 사격, 검술 등은 스크린 너머로 보는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게 했다. 특히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움직이는 그의 액션은, 진짜 전직 특수 요원인지 잠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왜 사람들이 8번 봤다, 20번까지 봤다 그러는지 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너무 잔인해서 원빈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으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난 그 잔인함이 매우 현실적으로 해석되었다.
원빈의 전직은 군인이다. 그것도 매우 특별한 임무-방첩, 요인 경호, 특수 작전, 암살-에 특화된 군인으로 그들의 훈련 장면을 본 국회의원이 쇼크로 쓰러지기 까지 할 정도로 냉혹무비한 대인살상 특수 군인이다.
따라서 그의 전직에 걸맞게 악당들을 쓰러뜨리는데 신속하고 정확하며 잔인하고 냉정한 액션들은 당연한 것이다. 이미 범인들부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 장기를 적출해서 암거래하고, 마약 운반은 기본으로 시키며 폭행, 고문,살인은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저지르는데, 이들보다 살인에 전문가일 원빈이 더 잔인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의 격투씬이 피범벅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폭력에 익숙한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기선 제압 및 무력화를 위해 최소의 움직임에 최대의 효과-피범벅이라든가 신체 훼손 등-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자기 자식을 연상시키는 소미에 대한 절박한 마음과 납치범들의 범죄에 대한 분노가 곁들여져 더욱 잔인해진 것도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이 가족을 잃으면서까지 지킨 이 나라에서, 이딴 범죄를 일삼는 악당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강한 감정도 없지 않았으리라 본다. 나 역시 그의 차가운 칼날 아래 악당들이 피를 흘리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며, 같은 사람들을 고깃덩어리로만 보고 돈벌이에 이용하는 그들에 대한 복수의 기쁨을 대신 맛보았으니까.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특히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끌려와 마약을 만들다 죽고 장기는 불법 거래되는 어린이들-, 법은 멀리 있고 감옥은 너무나 안락하다. 그래서 난 원빈의 칼날에 총알에 쓰러지는 악당들의 모습을 눈에 똑똑히 담으면서, 그의 분노는 아름답고 공정하며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일상에 만날 수 있는, 아니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저런 범죄들은 우리 개개인이 대응하기 역부족이다. 법의 힘을 빌리려고 해도, 처음에 차태식이 전화를 걸었을 때 장난 전화 취급을 하던 경찰의 목소리처럼, 혹은 소미 같은 애를 누가 신경쓰겠냐고 스쳐 지나듯 말하던 형사처럼, 아침마다 버리는 무가지의 한 장만도 못하게 처리될 것이다. 차태식같은 아저씨가 영화처럼 내 주위에 있지 않는 이상은, 결국 우리는 억울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피해자가 되어 잊혀지게 될 게 뻔하다. 그래서 그의 폭력은 극단적이긴 해도 혐오스럽지 않았다. 마치 딸을 강간한 범인들에게 총을 쐈던 어머니의 그것처럼, 무죄라고 외치고 싶은 처형이자 복수였다.   

그리고...
"소미를 구해도, 너희 둘다 죽는다." 
는 대사.
옛날 마카로니 웨스턴 시절의 복수는 주인공이 살려주는데도 불구하고 악당이 치사하게 복수하려다 당하거나, 개과천선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데서 끝났다. 난 10대때에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너무 많은 범죄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는 이미 용서하거나 감옥에서 속죄하고 감화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 들어 생각하는게,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인간의 죄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서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런 죄는,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인간이 결국 해결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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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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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아주 사소한 계기 하나를 심음으로써 그 사람의 미래의 일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설정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 놀랍게도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피셔 씨의 미래가 걱정되는 건 남일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돔 코브가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미래에 간섭하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악당이 할 만한 짓인 거다.

다만, 로버트 피셔는 사업상으로는 많은 것을 잃을 지 몰라도,

코브가 인셉션한 꿈 덕분에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사랑은 회복한 걸로 그려진다. (물론 자신만의 제국을 새로 세우는데 성공해 아버지보다 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과연, 아버지의 진심은 뭔지 차치하고라도, 이걸로 로버트 피셔는 한동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게 가장 괜찮은 결말인 것일까?

 

이 영화 전체가 누군가의 꿈이냐에 대한 논쟁은 이미 많이 논의되었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이 영화 줄거리가 보여진 그대로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이 보고 믿는 게 중요한가 이다.

로버트 피셔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 또 진짜 유언이 무엇인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주니어가 을 통해 받아들인 아버지로부터의 화해 메세지와 자신의 뜻대로 제국을 이끌어가라는 유언만이 분명한 걸로 남았다.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혹은 행복한 결말인 것인가?

내 꿈을 통해 내 미래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여도 행복하게 느껴지면 다 괜찮은 걸까?

게다가 꿈에 침입한 의도가 사이토가 말한 것처럼 사업적 이윤 추구 때문인데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

 

또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약 이 꿈이 인셉션 당한 것을 로버트 피셔가 도중에 알아차리고 깨어났다. 그렇다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라는 유언까지 무사히 듣는다. 다만 거기에는 아버지로서의 화해와 사랑의 메세지는 일절 없고 오직 재산을 불려서 피셔 가의 제국을 그대로 유지해라는 사업상의 유언만 있을 것이다. 따라서 로버트의 마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괴로운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이토의 사업 계획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돔 코브와 그의 팀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로버트의 꿈의 세계는 안전하게 지켜질 것이다...

 

과연, 인셉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기술일까 아니면 인간을 조정하기 위한 기술인 것일까?

만약 머지 않은 미래에(어쩌면 현재에도!?) 이런 식의 꿈의 간섭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과연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아주 깊이 신중히 말하다.

그리고 만약 내 꿈의 어떤 한 부분을 바꿈으로써, 내 먼 미래의 큰 부분이 아주 달라지게 된다면, 그것도 꽤 긍정적으로 달라지게 된다면(물론 이 확률은 랜덤이다. 로버트의 꿈에 침투한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와 감동의 메세지를 전부 계획하고 들어간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당신의 꿈을 인셉션하고 싶은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나라면, 글쎄?

 

난 나를 지키고 싶다. 내 무의식만큼은 나만 아는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갑자기 퓨처 워커가 떠오르는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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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페리먼트 - The Exper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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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 친구와 호기심에서 고른 영화였다. 

아마 당시 엑스페리먼트가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왠지 스릴러 호러 영화 같다고 해서 골랐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성인이긴 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참...  

줄거리는 한 대학에서 가상의 상황-감옥이라는 상황을 설정해서, 간수와 죄수로 팀을 나눔-에서 인간의 사고 방식과 행동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지원자들에게 실험한 것이다. 처음 실험을 시작했을 때,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하게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답게 돈만 받으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껄렁하게 행동하는 사람, 착실한 직장인 답게 주어진 역할에 끝까지 충실히 연기하는 사람, 잘 따르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은 부분에서는 강하게 저항하는 사람, 그리고 점점 더 자기 역할에 몰두해 격렬하게 변해가는 사람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를 수록, 자유로운 실험 분위기가 아니라 실험에 몰두하다 못해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실제로 제압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실험에 너무 대강 임할까봐 걱정했던 연구진의 걱정과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게다가 극한 상황에 치닫기 시작하는 실험을 보고 멈추자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연구진들은, 사람을 사람이 아닌 실험실의 모르못으로 보는 사이코 과학자들의 모습-아마 731부대가 연상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근데 이 과정들이 영화답게 극적이긴 했지만,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황당무계했다면 요즘같은 민주주의 사회에 어떻게 이럴 수 있겠냐며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었으련만.

결국 영화가 진행될수록 친구와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다음 장면 보는 게 힘들어지고, 답답하면서 짜증도 나고 화도 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끌림이 계속 있었다. 지금도 잊고 싶지만 몇몇 장면들과 전체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걸 보고 느꼈던 마음 한 구석의 묵직한 불편함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건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뒷이야기였다. 

맙소사. 

제발 설정극이길 바랬는데, 굉장히 현실적이고 공감가는 영화-그래서 더욱 보기 불편했던 영화-로fiction이길 바랬는데, 나와 친구의 바램을 무참히 깬 가장 슬픈 진실이었다. 

결국 이 영화를 보고 친구와 주고 받았던 토론 아닌 토론의 결론은 이거였다.

"만약 지금 이 실험을 다시 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글쎄...? 아마 똑같지 않을까? 아니면 더 처참하게 싸우거나." 

"그래. 나도 사실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이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평범한 내 동생, 오빠, 이웃 사촌, 이종사촌 형이 진압봉과 방패를 들고 시위에서 나와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변하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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