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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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은 괴기환상추리소설이었다. 

요코미조 세이시풍이 은은하게 느껴지려다 작가 특유의 분위기(?)로 전환되는 것도 괜찮았고, 나름 마을의 민속신앙 및 일본 역사와 결부시킨 미스테리를 사건 해결과 같이 풀어나가는 것도 재밌었다.(늘 하는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민속학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설이나 만화 소재로 이용되고 또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특히 마지막까지 범인에 대한 설명이나 여러 가지 상황이 뚜렷하지 않은 점, 엔딩을 나름 독특하게 풀어낸 것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열심히 맞춘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요코미조처럼 단순간결하게 전설이나 민속신앙을 정리해서 이용한 게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게 설명하고 반복하는 감이 있어, 일본 역사나 추리 소설을 처음 접하거나 이름 외우는 게 힘든 사람들한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나 역시 처음 봤을 때 들어가는 부분의 설명이 산만해서 지루한 느낌이 강했다. 작중 화자가 추리소설 지망생이고 뒤로 갈수록 기교가 다듬어지는 것이라서 그런 발단 부분을 넣었다면 이해는 하나, 그래도 지루했던 것은 지루했던 거다.;
그래서 별 한 개를 뺐다. 

그리고 제목에서처럼 이름을 길게 적은 것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내용을 집약해서 와닿는 느낌은 없었다. 차라리 "잘린 머리"라든가 "머리가 부른다" 이런 식으로 간결했으면 독자들의 뇌리에 더 오래 각인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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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빛 1 환상문학전집 34
메리 도리아 러셀 지음, 형선호 옮김 / 황금가지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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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그에게 보여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왜 신은 그에게 그것을 보여주었을까?
인간은, 신의 뜻을 계속 알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주어진 길대로 순종할 것만을 생각해야 하는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산도즈란 이름(이름인지 성인지 자신없습니다.)의 신부입니다.
그는 원래 마약밀수가 판을 치는 남미의 뒷골목 세계에서 살다가, 야브로(이름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서 마침내 성격도 소탈하면서 언어학에 재능이 뛰어난 멋진 신부로 인정받게 되지요.
산도즈 신부 자신은 자라난 나라에 남아서 계속 사람들을 가르치고 감화를 주고 받기를 원합니다만, 예수회에서는 그의 언어학 재능을 그냥 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멀리 떨어진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는 일행 중 한명으로 뽑히게 됩니다. 어떤 학생(인 듯 합니다.)이 그 행성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을 잡아내자 예수회쪽 사람들이, 그곳을 신의 뜻을 구현해낸 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탐사대를 파견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탐사대원들은, 산도즈 신부는 또다른 세계와의 아름다운 교감이 생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처음에는, 말입니다.

산도즈 신부는 그 행성의 사회는 인간의 것과는 또다른 질서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곳은 빈부격차가 엄청나거나, 사회 소외계층이 넘쳐나거나, 실업자와 깡패, 거지들이 들끓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두 계층간의 차이는 지구에서처럼 존재했지만 훨씬 평화스러워 보였고 지구인들 보다는 동물적인 감각과 인간적인 질서속에 아름답게 살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 뒤에는 인구 조절이라는 매우 강력한 규칙이 실행되고 있었던 것이 있었던 겁니다. 일정 수 이상을 출산하면 바로 거세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정해진 인구수를 초과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식량으로도 이용되어버리지요. 그래서 그들 사회에서는 부를 독점한 소수의 어른들 때문에 지구 한편에서 아이들이 굶어죽고 과도한 노동에 지쳐 죽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산도즈 신부는 이 사실에서부터 고뇌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인육을 먹는 것 또한 엄청난 갈등의 원인이 되었지만, 부족한 영양소 보충도 필요했기 때문에 산도즈 신부는 어쨌든 먹게 됩니다. 그 고기들이 누군가의 살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었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가장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언어학을 연구하던 그가, 언어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겼던 어떤 일이었습니다.  

그 사회에서는 담쟁이 덩굴 같은 식물로 은유되어지는 계층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은 특별히 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손근육이 잘라지고 신경이 끊어져서, 마치 언뜻 보면 버드나무의 줄기나 담쟁이 덩굴의 잎처럼 우아하게 밑으로 처지게 됩니다.
산도즈 신부는 여행의 동료들이 이런 저런 문제에 휘말려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곤란한 상황속에서 자신들을 돌봐 주던 그 행성의 종족인 '수파리'란 존재로부터 어떤 제의를 받습니다. 그는 담쟁이 덩굴같은 모습의 식물을 가리키며 그에게 무언가 선택할 기회가 있음을 시사하지요. 그리고 신부는 그것은 일행들과 자신을 편안케 하는 어떤 도움의 손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고맙다는 표현까지 해줍니다. 그리고 신부는 홀로 그 행성의 도시같은 곳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 때 당시에 이미 다른 일행들은 죽었거나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신부는...

희망이라고는 이제 아무 것도 없는 순간에, 이제 왜 신이 자신을 이곳에 보냈나 묻는 것 조차 포기한 그 순간에 그는 계획을 세웁니다. 지금 자신이 갇힌 곳의 문을 제일 먼저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덮쳐서 자신이 죽던가 그 사람이 죽던가 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자신이 죽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작은 그림자에게 용서없이 몸을 날립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깨닫게 됩니다. 그 그림자는 자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요.
죽어가던 그 작은 그림자는, 그가 이 행성에 와서 가장 먼저 친해지게 된 이 별의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위험을 알아채고 그를 도와줄 지구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지요. 피를 흘리면서 그녀는 말합니다.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그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이지요.
홀로 살아서 돌아오게 된 신부에게 당연히 많은 비난이 쏟아지고, 탐사를 지원했던 권력층 중 하나인 예수회에서는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왜 모든 일에 침묵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런 곳에서 발견되게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차라리 그가 안 돌아오는 게 일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불평하는 세력도 있었구요. 소설의 첫 장은 돌아온 이 산도즈 신부에게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예수회에서 노심초사하는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이렇듯 이 소설의 시작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종교적 고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갈등과 음모도 소설 전반을 통해 많이 드러납니다. 이 장르가 단순히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가득찬 SF 소설에 머물지 않고 최고의 SF 판타지 소설로 꼽히게 되는 이유도 이런 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을 보면서 생각이 점점 늘어나고 그 생각의 결과물에 자꾸 머리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지만, 그래도 꼭 한 번 생각해 봐야할 질문들을 애써 간추려 봅니다. 
우리가 옳다고 아는 것과 그들이 아는 것이 상충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는 상대편이 만들어낸 세계가 지극이 안유하고 이상적인 세계로 보인다면,
그들이 보내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노래와 글-즉 예술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이-실은 포르노 그라피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인간의 감정-연민,사랑, 정, 인륜 등- 이란 것이 실은 천국에 다가가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면,
과연 인간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오랜만에 저를 종교적으로 진지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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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내가 쓴 리뷰인데, 지금 내가 이 책을 보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생각하고 담은 것 같다. (즉 내가 쓰고 내가 감탄하고 있다는 이야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해지는 것 같이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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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1 (양장) - 심장을 적출하는 나가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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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건질 것은 아주 많다. 

진지한 와중에도 익살스럽고 재치넘치는 장면들이라든가 

판타지의 역사가 꿈틀거리는 듯한 웅장한 전투씬이라든가 

한글과 한국의 특징을 살린 캐릭터 설정과 언어 사용 이라든가 

숨가쁘게 몰아치면서 몰입도가 점점 커지는 소설 전개 방식이라든가  

그러면서 심오한 주제를 화선지에 물 스며들 듯 알려나가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말하자니 입이 아프고 더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기 때문에 가능한 참고 싶지만, 

당장 옆의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손에 쥐어주고 싶은 마음은 참을 길이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의 장점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뭐냐고 한다면, 

여성성을 지나치게 남성 위주의 시선으로 재단해서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 공식으로 쓰지 않은 부분과, 

현대에도 충분히 통용되는 진지한 주제를 무겁지만 최대한 쉬운 어조로 풀어나간 것을 꼽고 싶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내가 짚어낸 작가의 의도를 일일이 말하기 힘들지만(사실 몇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오늘 건진 최고의 주제는 이거다.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 

드래곤 라자에서도 봤던 주제였던 것 같은데, 이 글의 뒷부분에서 가장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점점 다문화 가족이 증가하고 해외여행 및 국내유입 여행자 수가 증가하는 이 마당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주 잊어버리곤 하는 것. 

판타지 소설을 통해 이것을 일깨우는데 탁월한 소질을 지닌 작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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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의 사각지대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7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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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어떤 분의 말마따나 현재의 CSI가 있다면 금방 해결될 사건이었겠지만, 

그게 아닌 시절의 이야기인만큼 답답하리만치 수사 진척이 더딘 감이 있다. 또, 범인 및 피해자의 심리를 다분히 연속극적인 어조로 묘사한 것도 그 당시의 분위기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많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자를 반드시 찾아내서 벌받게 하겠다는 형사의 강인한 의지와 정의 실현 정신은 지금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호화롭게 사는 범인과 대조적으로 박봉과 쪼들리는 출장비로 발로 뛰고 물어 물어 가며 범인의 트릭을 깨는 부분들도 가슴을 울리게 했다. 또 비정한 기업 사회의 이윤 추구의 모습과 개인의 출세욕으로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모습 또한 현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생생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범인이 누군지 추리하는 과정과 범인의 알리바이를 파훼하는 과정을 제법 흥미롭게 볼 수 있었고, 깔끔한 마무리 또한 소설의 여운을 개운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끝도 없이 잔인하면서 진지하고 지나치게 현학적인 추리소설에 질리신 분들이라면 개운한 해장국으로 볼 만하다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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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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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절반은 트릭이기 때문에 어떤 장치였는지는 미리 언급하지 않겠다. 

일단 40자 비평에도 말했던 것처럼, 소설 중반까지 도대체 범인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독자도 그리고 책속의 주인공도 같이 헤매게 된다. 주인공들이 번갈아 가설을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일련의 과정이, 독자도 같이 고민하는 것과 맞물려서 공감대를 꽤 형성한다.  

그런데 나한테는 아쉬웠던 게, 

이 트릭을 파헤쳐 가면서 범인을 마지막까지 구석으로 몰고 가는 전개 방식이면 보다 몰입도가 강했을텐데, 범인의 과거지사를 설명하면서 왜 범인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풀어서 말하다 보니, 결국 숨가쁘던 호흡이 탁 풀리고 마는 구조가 되었다는 거다. 게다가 범인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를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바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차라리 긴다이치처럼 마지막에 트릭은 바로 이것이다! 라고 보여준 뒤, 범인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던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 해주는 게 소설 마지막까지 독자의 감정을 흔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범인이 좋은 머리를 가지고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두 주인공이 꽤 매력있어 계속 시리즈물로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특히 주인공 남자의 집의 보안 장치-현관 자물쇠, 창문잠금장치, 보안 카메라 등- 에 대한 상당히 치밀하고 상세한 설명은, 우리집 잠금 장치도 안전하지 않다는 의심마저 들게 하기 충분했다. 또 여자 주인공에 대한 은근하면서 꾸준한 관심은 어딘지 레밍턴 스틸의 두 남녀 주인공을 연상케 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최근에 13계단과 그레이브 디거를 봐서 그런지 유리망치의 장점 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눈에 띄는 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 트릭 밝히는 재미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생에게도 권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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