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원만 빌려줘 ㅣ 트리플 36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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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썼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끝끝내 우리가 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p.137, 「마침표도 없이,」



안보윤 작가의 소설, 『이만 원만 빌려줘』는 문학계의 화두인 '연대'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내던진다. "'우리'라는 공동체는 흔히 누군가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고 그를 온전히 이해할 때 탄생하리라고 믿어진다. 하지만 이 소설집은 그 낭만적인 환상에 심대한 의문을 던진다. 자본주의적 교환가치와 얄팍한 동정심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타인을 자기의 잣대로 재단하고 소비하는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152, 「끝끝내 '우리'가 되지 않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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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르다: 솜씨가 설고 어설프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섣부른 행동 하나가 큰 화를 불러온다는 뜻이다. 당시에 그 섣부름은 비록 어설픈 정도였을지라도 그 결과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채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게 된다.


연이은 대학 동기들의 결혼으로 몇 달에 한 번꼴로 청첩장 모임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지인의 작은 문화협동조합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모임에 나온 동기들은 모두 안정적인 교직 생활을 하고 있었고, 우리 사이의 공통분모는 대학교라는 과거뿐이었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동기들은 그들의 직장과 대학원 생활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나는 한걸음 뒤에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이 사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기 한 명이 잊고 있었다는 듯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낸다고 조합에서 하던 일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동기들은 "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스트레스도 안 받겠다"라며 "너무 부럽다"라고 한마디씩 했다. 그날 집에 오는 버스에서 나는 생각했다. 다음 모임부터는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나에게 그들의 섣부른 판단은 비참했다. 불확실성이라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는 이미 깊이, 더 깊이 침잠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앞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너무나도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 사이에서 차마 나의 고통을 그대로 꺼내 보일 수 없었다. 그런 내게 건네진 그들의 가벼운 동경은 나를 심해 저 밑바닥으로 더욱 세차게 끌어내릴 뿐이었다.


섣부른 호의와 공감, 그리고 위로는 사람을 무너지게 만든다. 소설 속 김동주의 섣부른 호의는 순호를, 상담사와 의사들의 섣부른 공감과 위로는 정우를 무너뜨렸듯이. 동기들의 섣부른 판단 역시 나를 깊은 바닷속으로 던져버렸다. 서로가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그래서 결코 섣부르게 공감하지 않았던 오영과 정우만이 서로에게 "서로인 채로" 존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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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불행을 애착 인형처럼 끌어안고 다니는 삶을 인정하는 거예요. 인정하면 차라리 편안해져요. 아무리 재수 없는 일이 생겨도 이럴 줄 알았어, 하고 담담해지거든요. 기대도 억울함도 분노도 없는 삶. 불행이란 건 그리 대단치 않아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불행해지는 거니까요.
- P12

고작 이 정도의 삶을 지키기 위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정도를 위해 나는 많은 것을 지워왔다. 매트리스를 펴려면 식탁은 포기해야 하는 이서의 방처럼 눈앞의 단 하나만을 선택해왔다. 다른 걸 포기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건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것이었으니 선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하나를 가까스로 손에 쥐면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지워진다. 내 삶은 늘 그래왔다.
- P62

일상에 기대와 희망이 끼어들면 어떤 식의 비참함이 깨어나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까. 아무 기대도 없으면 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내일이 오늘보다 손톱만큼은 나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면 오늘도 제법 살 만하다. - P70

무지는 뒤끝이 없고 악은 가성비가 좋다. - P90

옷장 속에 숨기 겨둔 좋은 것, 그러나 그것은 훔쳐 온 것. 망가지고 깨지고 부서진 소리로 우는 가여운 것.
- P120

소중한 것들은 대개 가장 하찮은 이유로 일그러진다, 그러니 무언가를 지켜내려면 그것이 얼마나 연약한지부터 알아야 한다. - P128

대충 그런 식이었다, 나는 특별한 의지 없이 비겁해졌고 그럭저럭 변명하면서 매일을 살아왔다, 열이 올라 손끝이 바삭바삭해지는 기분이 들면 재빨리 도망쳤다, 바삭한 것들은 대부분 연약하니까, 연약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진 않았는데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자꾸 바삭해진다, 이것은 다만 손끝과 혀끝이 바삭한 인간이 쓴 소설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글이 거대한 변명의 장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에 대해 써야 한다, 오늘의 각오와 오늘의 실패, 오늘의 비겁함과 오늘의 오만과 오늘의 나에 대해 써야 한다,
​
그냥 쓰지 말자,
- P130

나는 내가 앞장서서 나를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다른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멍청한 생각이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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