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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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주 시노의 『슬픈 호랑이』는 고작 8, 9살의 나이에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작가의 증언록이다. 


작가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그녀의 현재의 삶 그리고 작품의 주제와 관련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이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펼쳐진다.


작가는 지옥에서 빠져나왔기에 쓸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일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어디를 가든, 아무 때나 내 고개가 돌아가고 그의 그림자가 보였다.”(p. 213)


*

"그 모든 일이 얼마나 역겹고, 얼마나 기괴한가.“(p.199)


‘분노’ 버튼이 눌린 채로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역겹고 경악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력물 가제본이라고 해서 한 손에 연필을 든채 편집자 흉내를 내며 읽어나갔는데, 페이지마다 써있는 건 ‘미친XX, 쓰레기'뿐이었다.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매번 날짜로, 사건으로, 구체적인 행위로, 사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애초부터, 그런 회귀, 그런 한없는 해석 속에서 길을 잃게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p. 193) 끔찍한 기억을 자기 손으로 끄집어 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참담하다. 언제까지고 그날의 범죄 현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가해자들은 범죄를 저지른 그날 이후, 바로 그 현장에서 벗어난 삶을 산다. “사회는, 그들에게 무거운 징역혁을 선고했지만, 그 형벌이 언젠가는 끝나기에, 그들에게 그 두번째 기회를 누릴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의 빚은 청산된다. 그들은 갇혀 있던 곳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p. 209) 실제로, 작가의 의붓아버지도 감옥에서 나와 산티아고 순례 도중 어린 여자를 만나 가족을 꾸리고, 친환경 농장을 짓고 살아간다. (미친...)


최악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아니 그 수많은 주변인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아 놓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둔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피해자는 주어진 하나의 삶조차 온전히 살아낼 수 없는데, 감히 가해자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니. 


심지어 가해자 자신들도 어렸을 때 학대의 피해자였다며 ”사람들은 너무 빠르게“ 자신들을 ”심판하고, 그들이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묻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들을 추방하고, 그들을 하류 인간으로, 변화할 수 없는 괴물로 여긴다”(p.205)며 이해를 바라는 지경에 이른다. 정말 치가 떨렸다. 감히 이해를 바라다니, 감히. 


가해자들은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잘못 때문에 어린 시절 없이, 순진무구함도 꿈도 없이 자라야 했다는 것을 생각할까?“(p. 206) 사실, 이 질문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짓 따위 하지 않았을테니.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그의 그림자”가 잠시라도, 살아가면서 단 한번이라도 떠오르지 않는 삶을 살길 바란다. 마음으로 바랄 수 밖에 없는, 다른 도움이 될 수 없는 이 현실조차 슬펐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일의 바탕을 따지고 볼 때, 무엇보다 강하게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그 학대자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벌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 P13

나로서는 아물어 가던 상처가 칼날에 닿아 다시 벌어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기가 어렵다. 마치 가사들에 이중의 의미, 감춰진 의미, 언제나 똑같은 의미, 나 혼자서만 이해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만 같다. - P28

그 사람 덕분에, 권력자들이나 독재자들, 또는 그냥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깨달은 바가 한 가지 있다. 그들은 어떤 나무로든 불을 지핀다. 자기들에게 유리할 만한 맥락을 지어내지 않아도 된다. 어떤 위기가 닥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위기가 없다. 그들은 무엇이든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꿀 수 있다.
- P71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일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 소녀는 나고, 그 일은 지금의 일이다. - P77

나는 위의 세 소녀이고 또 다른 많은 소녀들이기 도하다. 내 안에는 그 모든 목소리가 있다.
- P110

그 주제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었고, 원한 것도, 생각해 낸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남에게 강요당한 일을 매개로 존재한다는 것, 그건 지독한 악몽이었다. - P135

성인의 세계는 대개 회색이고, 회색의 무수한 색조이다. 우리의 성공이든 우리의 실패든, 그 회색의 부식성 때문에 가장자리가 침식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회색 지대에 살지 않는다. 아이들은 흰색 또는 검은색 속에 산다. - P190

아이나 청소년은 언제나 공간 속의 틈새를 찾아내 행복해진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행복의 길을 찾아낸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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