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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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무수히 많은 말뚝들에게 저의 눈물 한 방울을 보냅니다.


한 줄 평



*

『엉엉』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김홍 작가님은 참,

신기하다.



다른 표현을 떠올려 봤지만

이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뭔가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너무 말이 되는 느낌이랄까.



*

소설 초반,

너무나 많은 불행들이

주인공에게 몰려든다.



며칠째 고쳐지지 않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서해안에 떠내려온 말뚝들,

출근길에 당한 납치,

윤리경영지원실의 조사,

상간남 누명까지.



과연 어디까지 더 불행해질 수 있을까 싶은 순간,

주인공 앞에 말뚝이 나타난다.



그들을 마주하면 이유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모두에게 잊힐 수 없는 죽음이

말뚝의 모습으로 돌아"(p.247) 왔다.



*

말뚝들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

감정의 둑이 무너져내렸다.

주인공이 겪은 황당한 일들이

하나하나 복기되며 이해되기 시작했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의 미나리 김밥처럼.)



수많은 주변의 사회적 죽음에 대해

온전히 슬퍼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또다시 발생한 다른 죽음에

앞선 죽음들은 빠르게 잊혀만 갔다.



그렇게 해소되지 못한 슬픔들이

말뚝들 앞에서 멈추지 않는 눈물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마음껏 울어주고 싶다.

그들에게 빚을 지고 싶다.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p.280)

살아가고 싶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 P11

양반은 양반 대접을 받고 쌍놈은 쌍놈 취급을 당한다. 그게 장이 깨달은 사회의 법칙이었다. 당장의 직급이 아니라 근본적인 신분의 문제였다. 신분은 혈통으로 결정되고 면천은 극히 이례적이다. - P21

작은 부자를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게 빚이고, 큰 부자를 계속 부자로 있게 하는 것도 빚이었다. 빚 때문에 망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빚이었으니 빚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며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가난은 어디서 오는가? 사람들은 빚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가난해졌다. - P24

휴대폰을 켜고 클라우드에 접속했다. 사진첩에 없는 사진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흡사 기억의 무덤과도 같았다. 먼지가 쌓이지 않고 썩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보된 무덤이었다. (…) 요즘 사진에 비해 해상도와 선명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 듯했다. 지금 찍는 사진도 미래에 보면 희미할 것이었다.
- P138

그래도 내가 어른인데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어른이 뭔지, 나이를 더 먹어서 어른인지, 인턴이 아니라 정규직이라 어른인지, 옆에 앉은 그가 어른이 아니라는 근거는 뭔지, 그러면 둘 다 어른이거나 둘 다 어른이 아닌 쪽이 맞지 않을지 생각하다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 P164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삶에는 원래 엄청난 일이 계속돼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부터 봐요. 불행을 특별 대우해 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 P184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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