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뒤집기 트리플 32
성수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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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모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과

자신의 쓸모를 찾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p.139, 해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머릿속에 떠올랐던 문장 그대로

해설의 첫 문장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찻잔 뒤집기』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되는 소설이다.

비록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자신처럼 살아보길 바라지만

결국 그 둘이 되고자 하는 것은 서로였다.


*

자격지심.

자격지심이 자꾸만 생기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그 어느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교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관계를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건,

그 사람의 과거, 현재에는 내가 있지만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그 사람의 미래엔 내가 없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이 또한

자격지심에서 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

소설은 약간은 불친절한 듯하다.

인물들의 배경과 서사가 자세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그렇지 않을까 예상을 해볼 뿐이다.


인물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준 모든 서사를 담은

지나치게 친절한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매우 '호'인 소설.


미지의 생명체의 존재 또한

세 명의 등장인물 사이에서

상상해 볼 만한 거리가 되어주어 좋았다.

내 것인 척 타인의 이름을 말하며 느꼈던 이상한 해방감. 스스로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경한 감각. (…) 전부 거짓말이었기에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고, 누구든 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그 무한한 가능성에 계속 끌리기 시작한 것이. - P10

산산이 조각난다고 할지라도, 그런 식으로, 서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관계도 있지 않을까. 그게 서로에게서 영영 헤어지는 일이 될지라도. - P19

도자기 공방에서 가마 공방까지는 차로 사십 분 정도 걸렸고, 나는 그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아직 구워지지 않은 흙 반죽들을 뒷좌석과 트렁크에 잔뜩 실은 채 달리는 사십 분은 내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었다. 온몸에 피가 돌았고 머릿속이 깨끗하고 단순해졌다. 삶이 꽤 살기 쉽다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하기만 하면 시간이 흘러갔으니까. (…) 사십 분 동안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나를 우선시하지 않아도 됐다. 그게 좋았다. - P28

재미. 선물. 비밀. 모든 단어가 내겐 너무 멀었다. 저 단어들을 입 밖으로 내본 게 언젠지 기억나지 않았다.
- P37

쓸모 있는 것들은 이미 모두 그들의 손안에 있었고, 그래서 쓸모없는 것들로 계속 손을 뻗었다. 삶이라는 테두리 바깥을 궁금해하는 자신들이 꽤 엉뚱하다고 웃으면서, 매여 있지 않은 삶을 산다고 자부하면서, 재미는 자고로 그런 데서 오는 거라고 자만하면서.
- P38

결국 재미도 자격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일까? - P39

나는 쪼그려 앉아 하얀 덩어리가 된 강희를 열심히 빚었다. 강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나는 그게 늘 부러웠고 자주 미웠지만 가끔은 안쓰러웠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로움이 강희를 계속해서 삶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그 누구도 아닌 강희 스스로 벌인 일이었다. 쓸모를 계속해서 빗겨나가는, 벗어나려는 손짓. - P121

나는 혀로 내 앞니를 훑으면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생각한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단순한 이유로 일이 어디까지 틀어질 수 있는지 생각한다. 거울 앞에서 이를 들여다보면서 사람의 콤플렉스라는 게 이른 식으로, 이렇게 우연과 필연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엮이면서 발생하는구나,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억울함과 체념을 느낀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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