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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참 귀한 책이다.
역대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들의 글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귀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리고 책읽기에 대한 열망과
(그 동안 많은 책들을 읽어왔는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게
스스로 실망스러운 점이다.)
언젠가는 이런 책의 한 꼭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더욱 불태운 책이다.
『서른 번의 힌트』는
스무 명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들이
자신의 당선작을 모티브로 쓴 앤솔러지이다.
또한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해
'30'이라는 키워드도 곳곳에 숨겨져 있어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도,
짧은 단편들이었지만
이 짧은 글들을 통해
좋은 책들을 만나게 되고
좋아하는 결의 작가를 만나게 된 기쁨이 무척이나 컸다.
단편들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당선자들의 수상작에 대한 궁금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당선작들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만난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이 책을 덮고 난 이후부터
역대 한겨레수상작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려 한다.
모두 읽어본 뒤,
이 책을 읽었을 때 느끼게 될 그 감정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열이 내리고 나니 체중이 줄었다. 그 줄어든 무게 속에 이타심이나 배려, 유쾌한 감정이나 쾌활함 같은 것이 조금은 섞여 있을 것 같았다. - P19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거울을 본 적이 없었다.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 안에 담겨진 누군가의 모습을 잃어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 혹은 불안 때문이었다. - P35
넘겨짚는 것. 상대가 그러하겠거니, 그것이 당연하겠거니 멋대로 추측하고 그 추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건 그녀의 천성이었다. 상대가 아니라고,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고 짚어주어도 그녀는 자신이 넘겨짚은 게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 P46
꿈이라는 건, 소망이라는 건 꼭 이루어지지 않더래도 하나의 취미로써 누려지는 것이 아니갔어요. - P125
곳곳에 내가 있다. 행복한 나. 슬픈 나. 고통받는 나. 억울한 나. 우울한 나. 활발한 나. 수줍은 나. 그러나 이것은 모두 나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행복하면서도 억울하고, 고통받으면서도 웃는다. 우울하지만 섬세하고, 활발하지만 수줍다. 유독 슬픈 내가 있긴 하다. 특별한 사건을 겪는 나. 그렇다고 그 삶에 기쁨이 없는 건 아니다. 뜻밖의 운명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전까지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산다. 살아간다. 이쪽의 나와 다르지 않다. - P149
구체적인 미래는 이미 잃었고, 없는 미래를 잃었다는 말은 말이 안 되고, 내가 잃을 것은 과거뿐이었다. 살고자 애썼던 과거. - P219
인간에게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치아다. 치아는 가장 먼저 생성되고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남아 있다가 세상을 뜬다. 치아야말로 인간의 고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물질이다. 그래서 치아를 잃은 인간은 기억을 잃는다. 기억을 잃은 인간은 거의 동시에 존엄을 잃는다. - P302
그 아이가 처음 태어나 그의 품에 안긴 순간부터 자라던 모든 순간의 모습이 한 폭의 비단에 수놓여 그를 감싸는 것처럼, 모든 순간이 한 장면이 되어 펼쳐지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동시적 감각이었다. 그것은 밤하늘에 드리워진 얇은 비단처럼 부드럽게 그의 뺨을 스치고 너울너울 움직이고 알 수 없는 빛을 내었다. - P324
"엄마, 엄마도 제대로 된 어른 노릇 하고 싶다며? 어른은 그렇게 소리 안 질러. 일을 다 해결하고 감정이 다 진정된 다음에 차분하게 말을 하는 거야. 그거 알고 있었어?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어. 엄마는 친구한테나 할 이야기를 어린 나한테 다 했어. 난 그걸 다 들어줘야 했다고……."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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