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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평점 :
#살인청부업자 #은퇴
#마지막의뢰 #작가
키워드
'진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한 줄 평

'가짜'의 모습으로 사는 삶은 어떨까. '진짜' 나의 모습으로 사는 삶은 어떨까.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발가벗은 채 온전히 나를 드러내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스티븐 킹의 <빌리 서머스>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살인청부업자 '빌리 서머스'는 은퇴를 고민 중이다. 그런 그에게 200만 달러짜리 의뢰가 들어온다. "그는 나쁜 놈만 처단한다". 그가 "나쁜 놈들 밑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건 맞지만 그는 이걸 도덕적인 딜레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놈들이 사람을 고용해 다른 나쁜 놈들을 죽인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총을 든 쓰레기 청소부라고 생각한다".(p.19) 그는 암살작전의 시나리오대로 작가로 위장한다. 남들이 보는, 남들에게 보이던 '바보 빌리'와 달리, 책을 좋아하던 '진짜 빌리'는 암살 지시를 기다리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빌리는 "바보 빌리의 관점에서 자신의 일대기"(p.100)를 써 내려가면서 거의 평생을 쓰고 살았던 가면을 벗어던질 준비를 한다.
이 세상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이렇게 둘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이 세상은 셋으로 나뉘었다. (···) 가끔 참아가며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들이 세 번째 부류다. 이 세상 사람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하는 회색 인간들이다.
p.200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작품이다. 물론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했지만. 스티븐 킹 원작인지 모르고 '미저리'를 영화로 본 적이 있다. 정말 무서워서 죽을 뻔했다. 장면들에 대한 공포가 아닌, 인간에 대한 공포로 말이다. 영화를 본 이후로는 함부로 '미저리 같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샤이닝'은 애초에 포스터가 너무 공포스러워서 엄두도 못 냈다. 미저리와 샤이닝 모두 원작으로 다시 읽어 봐야겠다. <빌리 서머스> 역시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니 이것도 챙겨보고.
시간이 지나간다. 늘 그렇다.
p. 283
처음 책 소개를 볼 때부터 구병모 작가님의 <파과>가 생각이 났다. <파과>는 업계에서 퇴물 취급을 받는 나이 든 살인청부업자 '조각'에 대한 이야기다. 신선했던 점은 주인공이 '여성' 살인청부업자였다는 점이다. 그런 '조각'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고,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빌리 서머스>는 빌리가 작가 신분 상태에서 알고 지낸 동네 주민들에게 정이 들기 시작해 뒤늦게 의뢰를 접을까도 생각하지만, 그들의 안전을 위해 결국 의뢰를 완수한다. 그들을 위해선 자신에게 실망하는 편이 낫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가짜로 살아온 지난날을 마무리하고 진짜 빌리로 살기 위한 것에 집중한다. <파과>를 읽어보신 분들에겐 <빌리 서머스>를, <빌리 서머스>를 읽어보신 분들에겐 <파과>를 추천한다.
새벽 시간이 길고 길다. 떠오르는 상상이 너무 많은데, 그중에 쓸모 있는 건 하나도 없다.
p. 333
빌리는 직업상의 이유로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오늘날의 우리는 내가 처한 상황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가면을 쓴다. SNS에 행복한 모습, 여유 있는 모습의 자신만을 업로드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따라 하는 걸 보면서 그들은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더 두껍고 무거운 가면을 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은 그 뒤로 숨긴 채. 그것이 당장은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이런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드는 스릴러 소설이라니.
사실 지금 굉장히 불편한 상태다. 1, 2권으로 된 스릴러 소설을 1권만 읽게 된다는 건 정말 아슬아슬하구나. 마지막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는데, 하필 거기서 끊기다니! 2권을 읽지 못하는 내가 바로 스릴러 소설의 주인공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