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가 제철 ㅣ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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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기억 #그리움

#육개장 #방어 #야광별스티커

키워드


그대, 거기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한 줄 평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다. 하지만 그 끝엔 기억과 그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끝이란 없는 걸까. 상실에 대해 아쉬움이 든다면 기억과 그리움은 소중할 것이다. 상실에 대해 두려움이 든다면 기억과 그리움이 남는다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상실이라는 빈자리는 기억과 그리움으로 채워져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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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윤 작가님의 <방어가 제철>은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달밤>, <방어가 제철>, <만화경> 세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소중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p.123)던 이들을 애도하는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남겨진 이들은 "없는 것, 부재하는 것, 상실한 것, 그것들의 색"(p.126)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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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은 나, 언니, 소애 세 여자의 이야기다. '나'가 언니에게 말을 하는 듯한 형식으로 '나'의 입을 빌려 언니와 소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글을 쓰던 언니는 글을 쓰던 '나'를 챙겼고, '나'는 노래하는 소애를 챙긴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이어져 내린다. '나'는 소애에게 "태어난 거, 살아온 거, 살아 있는 거, 다"(p.26)고 축하를 하고, 한편으론 언니를 떠올리며 육개장을 만든다.

뭐랄까. 너무 쉬워요. 버리고 버려지는 게요.

<달밤>, p.22

<방어가 제철>은 나, 정오, 재영의 이야기다. "뭐 하나 특출난 것은 없지만 특별하기를 원하는 평범한 아이들"(p.47)이었던 그들은 그들만의 기억을 만들어간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나'와 정오는 방어를 시작으로 계절마다 만나 밥을 먹는다. "우리는 우리였고 우리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시간을 살았다"(p.70)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점점.

느닷없이나 갑자기가 아니라,

점점.

<방어가 제철>, p.59

<만화경>은 나경, 숙분, 단심의 이야기다. 나경의 숙분의 건물 302호에 세 들어 산다. 숙분은 "'창문으로 빼꼼 내려다보기'와 '대답 없이 빤히 얼굴 쳐다보기''헌 옷 챙기기'"(p. 84) 같은 행동으로 나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숙분의 옛 친구 단심이 1층에 이사 와 전을 부쳐 주변에 돌리기 시작하면서 그간 알고 지내지 않던 세입자들에 대해 알게 된다. 302호 베란다 환풍기 가장자리에 야광별 스티커를 붙여놓았던 '미리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흔히 뛸 듯이 기쁜 일이 벌어지거나 기분 좋은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일상을 뒤흔드는 큰 불행이나 걱정거리가 없는 상태,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지는 날들이 행복에 더 가까워요.

<만화경>, p.96

<방어가 제철>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음식이 등장한다. <달밤>과 <방어가 제철>에서는 음식을 통해 떠나버린 사람을 애도한다. <만화경>에서의 음식은 주변 사람들의 사이를 조금은 가깝게, 서로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음식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다 보니 읽으면서 군침이 돌기도 한다. 나에 대한 안부가 되기도 한달까. 너 오늘은 뭐 좀 챙겨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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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가 제철>은 잔잔하고, 덤덤하고, 일상적이다. 딱 내 스타일. 감정이 몰아치는 큰 기승전결 없이 잔잔하다. 상실의 슬픔조차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만큼 덤덤하다. 나에게도, 주변에도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책은 죽음과 그 상실감에 대해 한 발자국 뒤에서 조금은 건조하게 생각해 보게 했다. 내가 그런 죽음을 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을 잘 보내줄 수 있을까. 잘 보내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을 기억과 추억에 묻고 그리움으로 새롭게 맞이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 한 <방어가 제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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