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한 교육>
교육의 본질은 외부와의 통로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와 연결되는 것, 그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입니다.


음악은 시간 의식을 함양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한 풍부한 의식이 없는 사람은 음악을 감상할 수 없습니다. 악기 연주도 감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이미 사라져버린 소리‘가 아직 들리고 ‘아직 들리지 않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과거와 미래의 확장 속에자신을 두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양교육은 요컨대 의사소통 훈련입니다. 그것도 뭔가 잘 모르는 것과의 의사소통, 공통의 용어나 도량형이 없는 자와의 의사소통 훈련이지요. 그렇죠. 의례와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관계 맺는 기법입니다.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 경우 언어와 수치 같은 인간적 척도는 쓸 수없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인간적 용어와 인간적 척도를 사용할 수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의사소통을 하는 훈련이 교양교육의 진짜 목적 아닌가 싶습니다.

전공교육은 내부 사람만의 파티를 의미합니다. 전문용어로 대화가 되는 장소, 혹은 ‘통하는 걸로 되어 있는 장소입니다.

전문 지식만 공부하면, ‘능력 있는 전문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어떤 전문가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배출될 뿐입니다. 교양교육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자각을 기초로,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모를 때 그럴수록 더욱 적절하게 행동하는 방식‘을 익히는 훈련이 바로 교양교육입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파악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연결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저는 앞에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의 구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일본 교육에 가장 결여되어 있는 것은 타자와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의 교육문제는 어쩌면 전부 이 하나에 집약될지도 모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경쟁을 강화해도 학력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일본처럼 닫힌 상황, 한정된 구성원들 사이의 실험쥐경주에서 우열을 정하는 한, 학력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떨어질 따름입니다. 학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있는 곳과는 다른 장소, 바깥과의 관계 맺기가 필수적입니다. 〈황야의 7인〉에서는 산적이, 〈대탈주)에서는 독일군 간수가 주인공들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진지하게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결함을 메우지 않으면 ‘바깥‘을 상대로 한 프로젝트 산적 퇴치, 포로수용소 탈주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맡아줄 친구에겐 깊은 경의를 표시하고 가능한 한 지원하 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본래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떻게서로를 도울까, 어떻게 서로 지원할까, 어떻게 혼자서는 결코 달성할수 없는 큰일을 함께 달성할까, 우선 이를 위해 필요한 인간적 능력을키우는 데 교육 자원을 집중시켜야겠지요.

<갈등하게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교사>

좋은 교사를 키우기만 하면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생각 그 자체가저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교사가 옳은 교육법으로 교육하면,
는 아이들은 점점 성숙해진다는 생각이,
인간을 너무 얕게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그 시대의 지배적 가치관과 어긋나는 생각을 하는 사람 이 되는 것 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이것으로 됐어‘ ‘지금 일본은 이상적인 사회야‘ 하고생각하는 사람은 구조적으로 교단 위에 설 수 없습니다. 사춘기에 세상은 좀더 공정하고 좀더 평등하고 좀더 평화로운 곳이 되어야 한다‘는는 생각을 품었던 청년들이 교단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초등교육에서는이상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초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우러러보는 교사 중에 그 시대의 사회 시스템에 만족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집은 가난하고 부모는 이해력이 부족해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확신이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 아이들을 발견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지원하는 데 꽤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돕는 아이들이 자신의 분신으로 보였을테니까요.

아이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서 배워야 하는 것은 깔끔한, 모순 없는 사회의 매끄러운 성립이 아니라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순된 사회의 모순된 성립에 대한 넓은 포용력과 거친 통찰입니다. 그러므로 교사 자신이 모순된 존재라는 것은 교육적으로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승리와 패배의 경쟁구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아이들이 성공과승리를 거두도록 자극하는 선생, 약자나 패자에게 깊이 공감하면서도 강자나 승자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 선생, 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고 완전히 반대하는 것도 아닌, 그 안에서 분열되어가는 선생, 그래서 종종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 선생, 그런 선생이 좋은 선생입니다.

교사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교육이 기능하는 데 별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이고, 그 관계가 성립하기만 하면 아이들은 배워야 할 것을 스스로 배우 고, 성숙으로 향하는 길을 스스로 걸어갑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교단 위에 누가 서더라도 관계없다는 뜻입니다.

아이를 과보호하며 키우는 부모와 갈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는 그냥 놔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선생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아이를방임하며 기본적인 돌봄조차 하지 않는 부모와 갈등하게 하려면 아이에게는 지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생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경쟁에서 살아남게 하고 상위 계층에 오르게 하려는 부모와 갈등하게 하려면 인간의 가치는 돈과 지위로 잴 수 없다고 믿는 선 생이 좋습니다. 여러 유형의 부모가 있듯이 여러 유형의 선생이 있습니 다.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부모의 대립항이 되어야 하는 아저씨, 아주머니의 유형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교사상‘이라는 담론에 기초하여 교사를 단일한 이미지로 한정 지으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난센스입니다.

<춤춰라, 계속 춤춰라>

교사 자신이 배움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배우는 방법은 지금 배우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배우고 있는 배움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배우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배움을 통해 배우는 자를 성숙시키는 것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적콘텐츠가 아니라, 나에게 스승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내 외부에 나를 훨씬 초월한 지적 경위가 존재한다고 믿음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지적 한계를 넘어섭니다. 배움은 바로 이 돌파를 의미합니다.
돌파는 자신이 설정한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자신이 설정한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한계는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처럼 나의 외부에 있어서 나의 자유와 잠재적 가능성의 발현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이런 일은 나는 할 수 없다‘는 자기평가가 우리 자신의 한계를 결정합니다. 이런 자기평가는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평가의 객관성을 꽤높게 설정하는 겁니다. 자신이 자신을 보는 눈은 타인이 자신을 보는눈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전제하는 사람만이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나 고 말합니다.

자신이 있는 세계와는 다른 곳에 예지의 경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만 하면 배움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 다음은 스스로 배웁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인간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만 배웁니다.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만 배웁니다. 또 자신이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만 배웁니다. 그러므로 교사의 일은 배움이 일어나게 하는 것, 그뿐입니다. ‘외부의지에 대한 욕망을 기동시키는 것, 그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교사 자신이 외부의지에 대한 격한 욕망에 불타올라야 합니다.

<이지메에 대한 다른 이해>

학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이들이 더불어 사는 기술을 익히기도 전에어서 빨리 원자화 · 모래화 · 개별화 하라는압력을 행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되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말씀드린 것처럼 학교는 아이들을 바깥 세계로부터 격리해서 보호하는 것을 그 본질적인 책무로 삼아야 합니다. 학교와 바깥 세계 사이의 벽, 즉 아이들을 바깥으로부터 지키는 벽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온실‘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차피 욕망으로 점철된 곳’임을 가르쳐주는 것이 외부와의 회로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부모와 주위 어른,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세속의 가치관과는 다른 문법으로 만들어지고, 다른 측정법으로 잴 수 있는 예지智의 경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의 첫 번째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교육이 무너진 것은 학교와 사회를 격리해온 이 ‘벽’이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교사도 부모도 교육행정도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신봉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부는 스스로 알아서, 일부는 싫다고 고개를 흔들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학교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온도차가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집단 형성하기’와 ‘개체로서 홀로 있기’라는 두 가지 요청을 동시에 받아들여서 깊은 혼란 상태에 놓인 것이 이지메라는 병적 상황의 바탕에 있지 않을까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을 그냥 두면 반드시 어느샌가 가까이 와서 똑같은 도구를 상대방 신체에 갖다 대며 놀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집단 형성이 자아의 확대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개성적으로 돼라고 하는건 그 다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개성적으로 키우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전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겁니 다. 바로 다른 사람과 하나의 공共신체를 나누어 갖는 경험입니다.
아이들은 공共신체 형성으로 자신이 ‘큰 네트워크 안의 하나의결정전 이라는 감각을 익힙니다. 개성이 출현하는 것은 그 뒤입니다. 네트간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네트워크의 운동과 기능이 변화합니다. 자기가 던진 돌멩이 한 개가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것입니다.그런 경험을 쌀 아감으로써 아이들은 집단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됩니다.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집단 형성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혹은 그보다 빨리 ‘개성의 발현‘이라는 과제가 부과됩니다. 또래친구들과 먼저 집단을 형성하고 그들과 호흡을 맞추고 감각을 공유하고 하나의 공共신체를 만들어내는 데 전념해야 한 시기에 오히려 ‘집단을 만들지 마라,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마라, 개별화 해라, 자신만의 태그를 만들어 붙여라, 자신이 받아야 할보상을 타인과 나누지 마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인사 규칙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침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당황스럽습니다. 눈에 띄는 개체는 이지메 대상이 되고, 반대로 무개성적인 개체 역시 이지메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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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 달 동안 방치해 놓았던 우치다 타치루의 책이 나를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춤추게 한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시원한 책!

저는 선생님들이 용기와 힘을 얻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아무리생각해봐도,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있는 교사들 말고는 없습니다. "선생은 더 이상 안 돼, 그들이 교육을 개혁한다고?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어!" 하고 말하는 사람이 만약 진심으로 교육을 개혁하고 싶다면, 무능한 교사들을 밀어제치고 "비켜! 내가 대신 가르칠 테니까. 내가 하는 걸 보라구"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닌 한 설득력 있는 대안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교실에서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들외에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들이 용기와 힘을 갖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의욕이 솟아나고, 생각한 대로 잘 되지않아도 낙담하지 않을, 그런 힘을 주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정치인과 언론, 교육 관료들은 제발 부탁이니 교육은 현장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두시라!" 이것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제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냥 내버려두는 것만으로 교육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을 만큼 낙천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둠으로써 최소한 교육이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교육을 바꿔야 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
• 교육제도는 타성이 강한 제도여서 쉽게 바꿀 수 없다.
• 교육에 관한 논의는 (제가 제기한 논의도 포함해서) 과도하게 단정적이고 독선적으로 되기 십상이다.
•교육제도는 일시정지시킨 상태에서 근본적인 보수를 할 수 없다•제도의 하자는 지금 눈앞에 있는 ‘하자 있는 제도‘를 통해서 바로잡을수밖에 없다.
• 교육개혁은 교사들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비판과 검열, 통제를 받으면서 성취도가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지지받거나 용기를 얻고 자유로워짐으로써 그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

<교육은 바지니스가 아니다>
 ‘학교재정을 흑자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교육을 하면 될까?‘ 생각하는 것과 우리들이 하고 싶은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재무 상태를 어떻게 개선시켜야 할까?‘ 생각하는 것은, 얼핏 비슷해 보여도 그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즉, 학교제도는 투여한 것과 다른 형태로 그 결과가 ‘언젠가‘ 돌아오는 그런 제도입니다. 오리지 비즈니스 마인드만 있는 사람은 이런 호흡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겁니다. 교육에도 시장 원리, 경쟁 원리를 도입하자‘ ‘경영을 게을리하는 학교는 시장에서 도태되어 퇴출당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것이다‘ 같은 생각들은 매우 명확하고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교육과 비즈니스가 다루고 있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비즈니스는 무無시간 모델입니다만 교육은 그렇지 않습니다. 

<배움은 쇼핑이 아니다>
배움은 이륙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이런 인간이다.
이런 것은할 수 있고 저런 것은 할 수 없다‘ 식으로 규정했던 틀을이탈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뛰어넘은 시좌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요. 즉, 자기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때까지 몰랐던 언어를 습득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유비쿼터스 대학 구상은 상품 거래의 원칙으로 배움을 포착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유비쿼터스 교육론자는 카탈로그를 보고 클릭 몇 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흥미로운 과목을 누구의 개입이나 의논 없이 백 퍼센트 자기관리하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인간을 구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 것같습니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서, 영원히 자기모습 그대로 있고 싶어서 너무 좋아하는 자신‘을 외형적으로 좀더 가꾸어주는 것, 자신의 잣대로 그 가치를 잴 수 있는 것 - 지식, 기술, 자격, 신분, 연봉, 사회적 위신 등을 희구하고 있다는 것이 유비쿼터스대학 구상의 기초에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물론 그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나는 굳이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감입니다만 그런사람은 결국 ‘배움과는 인연이 없다는 것은 말해두고 싶습니다.

대학 교수가 연구나 교육을위해서도 아니고 대학 운영을 위해서도 아닌, 단지 학위 공장과 질 보증을 세트로 수입한 행정이 저지른 과오를 뒤치다꺼리 하느라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 것입니다. 저는 일본 전역에 있는 대학 교수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립대학 교수 중에는 대학 설립 기준의 완화, 교양과정의 개편, 학부 재편, 법인화와 관련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문부성에 제출할 보고서만 계속 써왔기 때문에 그동안 전공연구를 거의 할 수 없었다는 사람이 몇천, 몇만 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에 동원되는 사람은 어느 대학이든 젊고 일 처리가 빠르며 요령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귀찮은 일은 결국 그런 사람에게 배당됩니다. 그들이그런 보고서를 쓰지 않고 연구와 교육에 전념했을 때 얼마만큼의 업적을 내놓을 수 있었겠는가를 상상하면, 저는 그 헛된 노력에 깊은 허탈감을 느낍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가활동으로 일본의 고등교육이 잃어버린, 그리고 지금도 잃어버리고 있는 지적 자산이 얼마만큼인지 문부성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문부성은 늘 평가 비용을 ‘0‘으로 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조금만 살피면 평가 비용이 얼토당토않게 많이 든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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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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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들과 함께 백년 넘게 산 기분이다.˝
작가의 고백처럼 ‘역사의 가방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야했던 세 여자와 더불어 한 세기를 넘나들며 마음이 많이 소진됐다. 함께 벅차고 함께 절망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인내한 시간이었다.
관습에 얽메인 시대, 디아스포라의 암담한 현실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고 시대를 껴안았던 세 여자들은 운세주와 동지들처럼 역사와 함께 시대의 노을로 져갔다. 고명자, 주세죽처럼 무명으로 스러졌던 허정숙처럼 끝까지 영광을 누렸던 비껴간 영광의 그늘 속에서 그들이 품었던 열정과 이상의 싹은 아직도 푸릇푸릇하다. 허정숙, 허헌, 박헌영, 최창익, 김단야, 주세죽, 고명자!
되찾은 조국의 땅에 난무했던 광기들이 뜻밖의 결과를 산출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기게 한 것이 가슴저리게 아프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자유를 자유로 평등을 평등으로 존중하며 우리의 아들, 딸들은 이 시대와 더불어 살고 있는가? 문득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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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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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들과 함께 백년 넘게 산 기분이다.˝
작가의 고백처럼 ‘역사의 가방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야했던 세 여자와 더불어 한 세기를 넘나들며 마음이 많이 소진됐다. 함께 벅차고 함께 절망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인내한 시간이었다.
관습에 얽메인 시대, 디아스포라의 암담한 현실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고 시대를 껴안았던 세 여자들은 운세주와 동지들처럼 역사와 함께 시대의 노을로 져갔다. 고명자, 주세죽처럼 무명으로 스러졌던 허정숙처럼 끝까지 영광을 누렸던 비껴간 영광의 그늘 속에서 그들이 품었던 열정과 이상의 싹은 아직도 푸릇푸릇하다. 허정숙, 허헌, 박헌영, 최창익, 김단야, 주세죽, 고명자!
되찾은 조국의 땅에 난무했던 광기들이 뜻밖의 결과를 산출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기게 한 것이 가슴저리게 아프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자유를 자유로 평등을 평등으로 존중하며 우리의 아들, 딸들은 이 시대와 더불어 살고 있는가? 문득 질문을 던져본다!

"내 나이 벌써 육십여섯이구나. 오래도 살았네. 애비가 세상에난 것이 갑신년 정변 이듬해였으니 조선 땅에서 개화의 역사하고같이 나이를 먹은 거야. 내 생전에 나라가 풍전등화 아닌 적 없었고 더구나 식민통치까지 갔으니 명색이 동경서 근대 법체계를 공부했다는 자한테 이 현실이란 건 잠시 넋 놓고 쉴 틈도 허락지 않더란 말이지. 눈에 보이느니 모순투성이고 당장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일들뿐이었으니, 권태롭고 나태한 인생보다는 살 만하지않았나 싶다마는 돌이켜보면 내가 한 일들 중에 태반은 안 해도좋은 일 아니었나 싶구나, 지금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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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사람 진광화와 밀양 사람 윤세주가 중국 대륙 깊숙이 태항산 골짜기에 묻혔다. 해 질 무렵이었다. 정숙은 간밤에 비 뿌리고 진한 핏빛으로 젖어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몸이 땅에 묻히면 영혼은 노을에 묻히는가. 이곳에서 세주의 고향은 너무 멀구나, 그의 노모는 이 시각에 무얼 하고 있을까. 밭에서 호미질하다가 잠시허리를 펴고 서쪽으로 지는 해를 보고 있으려나.

철이 들었을 때 조선은 식민지였고 그것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문제이고 모순이며 바꾸거나 선택할 수 있다고 했을때 공산주의는 얼마나 위대해 보였던가. 하지만 해방운동 하네 계급운동 하네 하면서도 무의식에는 천황은 전지전능이고 일본은 천하무적이고 식민지는 조선의 운명이라는 열패감이 깔려 있었던모양이다. 일본 항복이라는 뉴스의 충격을 소화하는 데 한나절은 너무 짧았다.

대낮처럼 환하게 횃불을 밝힌 혁명군정학교 운동장에서 독립동맹의 김두봉 주석은 단상에 올라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마침내 우리가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게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원수를 우리 손으로 무찌르지 못해서 온몸과 온정신으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을 때 장내는 숙연해졌다.
정숙 역시 비슷한 감상이었다. 해방감 한편으로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녀 자신도 지난 10년 동안 중국에 나와 악전고투했고 수백 수천만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총칼 아니면 곳간에서 녹슨 쇠스랑이라도 들고 나와 죽기 살기로 싸웠는데도 끄떡 않던 일본이 미제 핵폭탄 두 방에 끝장났다는 게 허탈했다. 왜놈들의 항복은 그들에게 가장 징하게 당한 조선인들, 아니면 중국인들 손으로 받아냈어야 했다.

의용군 총사령 무정이 "우리 의용군도 있고 임정의 광복군도 있는데 왜 남의 나라 군대가 들어온단 말이야!" 하고 고함쳤다.
‘김두봉이 "우리도 중국 땅에서 일본 놈들하고 싸웠고 연합국의일원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 문제를 가지고 저들끼리 쑥덕공론하고 있나. 소련군이 두만강으로 밀고 내려갈 때 우리가 합작으로 진군했어야 했는데, 저승에 가서 김학무 진광화 윤세주 동지를어떻게 보나" 라면서 최창익의 눈치를 살폈다.

"이건 본말전도 아닌가. 전범국가인 일본이 분할돼야지 조선은 피해 당사국인데 의용군이나 광복군이 일본 놈들하고 싸웠는데 우리는 명색이 참전국인데 왜 이런 대접을 받는단 말인가."
미군과 소련군의 분할점령이라는 것도 어리둥절했지만 정숙은 당장의 진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어디로 돌아가야하나, 독립은 했으되 땅이 두 동강 났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북으로 가야 하나, 남으로 가야 하나, 어느 쪽이 내 조국인가. 내가 떠나온 곳은 서울이고 거기에 아버지와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념적 동지는 소련 아닌가.

독립동맹과 의용군이 비바람 맞으며 만주벌판을 가로질러 민족대이동의 귀국길을 밟아오는 동안 소련이 새파랗게젊은 극동군 대위 김일성을 군함에 태워 날렵하고도 신속하게 평양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미군의 점령군통치가 시작됐는데 이것은 일제 식민통치하고 같은 듯도 하고 다른 듯도 했다. 총독부 건물이 군정청이 되어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갔고, 아베 총독이 가고 하지 중장이 왔으며, 총독부 국장과 기관장 자리를 대령부터 중위까지 미군 장교들이 차지했다. 모든 직제가 왜정 때 그대로이고 해방 후 며칠간 도망갔던 조선인 경찰들이 다 예전 자리로 돌아왔다.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정부체제로 바꿔놓았더니 미군이 들어오자마자 불법화시켰다. 대신 미군정은 10월에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의 환영대회를 열어주었고 11월에는중국에서 돌아온 김구 환영대회를 열어주었다. 하늘이 몇 번이나뒤바뀌었다. 2백 개 넘는 정당이 생겨났고 수십 종의 신문이 창간 됐다. 수도의 명칭, 경성은 서울이 되었다.

모택동의 신민주주의가 토지개혁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안파의 공식 입장이었고 연안파가 이번에 결성한 당의 명칭도 ‘신민당‘ 아니던가.
하지만 김일성의 인민위원회와 소련군정은 소련인 고문 두 명을데리고 토지개혁법을 주무르면서 신민당 의견을 묵살했다. 그녀가 문제점 보완 어쩌고 해도 의욕들이 생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토지개혁이 계획대로 돼간다면, 빈농, 노동자계급을주력으로 하는 공산당이 약진할 것이고, 부농과 지식인 그룹까지포괄하는 신민당은 약화될 것이며, 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기독교인들이 주도하고 지주 자본가들이 뒷돈을 대는 조선민주당은 기반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이 북조선공산당과 소련군정이노리는 바였다. 토지개혁의 복마전에서 당파들이 각기 잇속을 따지며 주판알을 퉁기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 혁명가는 사라지고 정치가들만 득실거리는 것이다.

사회를 혁명적으로 개조하는 일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이며 리더십의 절반은 선전활동으로 지탱된다. 국가 단위의 지도력이란 개인의 자질과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더구나 김일성은 최고지도자가 되기에 너무 젊었고, 여러 모로 불리하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선전사업이 필요했다.

 연안과 동지들은 김일성을 자꾸모택동과 비교하려 드는데 모의 권위는 투쟁경력과 팸플릿에서나왔고 끊임없이 팸플릿을 써서 이론과 원칙으로 당을 지도하고투쟁을 이끌었다. 레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혁명지도자가 조선에선 박헌영이다. 그는 공산주의 진영에서 단연 최고의 이론가다.
반면 김일성은 마르크스 서적을 한 권이라도 차분히 읽었을까 싶다. 정숙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겹쳐놓아 보았다. 늘 정확하게 원리원칙을 이야기하고 할 말만 하는 박헌영이 예민한 지식인 혁명가의 전형이라면 무관 특유의 무데뽀 스타일에다 허풍기도 있고 실없는 소리도 하면서 사람 어르고 뺨 치는 김일성은 타고난 정치인이다. 두 사람 모두 배짱과 강단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지인 재목으로는 누구일까, 어쨌건 소련은 김일성을 낙점했다.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오.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개인의 이성과 판단을 넘어서 있소. 용서한다면 시대를 용서해야겠지. 단야는 마땅히 해야 할 선택을 한 것이오."

그렇다고 해도 정숙은 헌영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나라면 앞뒤 안 재고 저지를 것이다. 중앙아시아 외딴 곳에서 여자가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나는 물불 안 가리고 손을 내밀 것이다. 냉정한 인간! 여자를 품을 줄 모르는 남자가 세상을품을 수 있을까. 헌영을 존경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건 그래서지.
그녀는 현실의 벽 앞에 고개 숙이고 돌아서는 이 남자가 한없이작아 보였다.
"비겁해!"

예전에 명자는 공산주의자였지만 해방 후엔 여운형 선생이 옳다고 믿어 그가 하는 대로 건국준비위원회, 민주주의민족전선,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을 쫓아다녔다. 명자에겐 그가 당이고 테제였는데 하늘이 그를 데려가버렸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 지 아득했다.

분할점령이 영구 분단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분단을 피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들이 주어졌지만 불발의 역사에 그치고 만 것은 남북을 통틀어 그것을 현실화시킬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만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면 그건 여운형이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자신을 정의로, 타인을 불의로 설정하는 지점에서역사의 비극이 싹튼다.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점령한 것은 분단의 시작일 뿐이었다. 분단을 완성한 것은 어리석음과 아집과 독선이었다. 극악한 식민지 상태에서 갓 벗어난 사람들에게 대화와 타협의 매너를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관대함과 현명함의 미덕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이 없는 환경에서 훈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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