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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91년 서울 : 내게 1991년 4월은 한 달 내내 애타게 기다리던 첫 발령을 받아 교사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때이다. 베를린장막이 무너진 이후(1989.11.16)라는 기억은 있는데 한소수교로 고르바초프가 방문한 때인 것은 전혀 기억에 없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은데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이 더 커서였을까?

1920년대 여자들의 단발은 과연 핫이슈. 1895 을미년 단발령 때 남자들은 머리를 자르느니 목을 치라며 자결하기도 했고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자들이 상투를 자를 때 그것은 봉건왕조와의인연을 자르는 일이었지만 지금 여자들이 쪽진 머리를 풀어 자르는 것은 ‘나, 독립된 인격체요‘ 하는 1인시위였다.
삼종지도의 여자들이 숨죽인 채 물밑에 빙산처럼 잠겨있었지만 그 꼭대기에서 한 줌의 여자들은 이광수의 <무정>을 읽고서 자유연애주의자가 되었고 입센의 희곡에서 읽은 대로 인형의 집을 뛰쳐나갔으며 사상단체에 가입해서는 맑스걸 엥겔스레이디가 되었다.
 비비안나는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침묵이, 그 고독이 무서웠다. 어머니는 살아서 고독했고 죽은 뒤에도 고독했다. 어머니를 그런 무서운고독 속에 살게 만든 건 시대였다. 하지만 단 한 점 혈육이었던 자신도 어머니에게 적대적이던 그 시대에 가담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1. 부부가 되어 무산자계급 해방에 일생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까? 1920년 상해:
2. 수예시간에 톨스토이를 읽었답니다.1924년 경성
3. 청요릿집의 공산당, 신혼방의 청년동맹 1925년 경성
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1927년 경성
5. 마침내 혁명의 심장에 도착하다 1928년 모스크바
6. 자본주의 세계의 종말이 머지않았소 1929년 경성
7. 상황이 우리를 같이 살게 만들었어요 1932년 상해, 모스크바
8 .나 간다고 서러워 마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1935년 경성
9. 이곳이 당신들의 종착역이다 1936년 모스크바, 크질오르다
10. 일본 형제들이여, 그대의 상관에게 총구멍을 돌려라1938년 무한, 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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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 미술책 - 탄탄한 그림 감상의 길잡이
김영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가이드가 유쾌해서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진다. 출판사의 편집 짜임도 지혜롭고 만족스럽다. ‘탄탄한 그림 감상의 길잡이‘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이 책을 읽고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나보다 완벽하게 잘 그리는 수많은 전공자들이 있어서, 잘 그릴 자신이 없어서 그리지 않았던 그림! 이중섭의 ‘사랑의 엽서‘를 보니 너무 사랑스럽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너희도 이렇게 그릴 수 있잖아? 마음을 담아 그려봐.˝
라고 권하고 싶다. 김정희 세한도의 모서리가 맞지 않은 집, 전혀 방향성이 통일되지 않은 세잔의 정물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아비뇽의 처녀들이 참 유쾌하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말했던 ‘고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도 깨닫는다.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내면을 그리고자 했다는 말에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수직 상승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세상에 외친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이 진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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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가이드가 유쾌해서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진다. 출판사의 편집 짜임도 지혜롭고 만족스럽다. ‘탄탄한 그림 감상의 길잡이‘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이 책을 읽고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나보다 완벽하게 잘 그리는 수많은 전공자들이 있어서, 잘 그릴 자신이 없어서 그리지 않았던 그림! 이중섭의 ‘사랑의 엽서‘를 보니 너무 사랑스럽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너희도 이렇게 그릴 수 있잖아? 마음을 담아 그려봐.˝
라고 권하고 싶다. 김정희 세한도의 모서리가 맞지 않은 집, 전혀 방향성이 통일되지 않은 세잔의 정물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아비뇽의 처녀들이 참 유쾌하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말했던 ‘고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도 깨닫는다.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내면을 그리고자 했다는 말에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수직 상승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세상에 외친 ‘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이 진한 울림을 준다.

1. 새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그리다. (어떻게 그린 걸까?)
-닮았지만 훨씬 멋들어지게 르네상스 미술 · 조토 디본도네
-좀 희한하게 그려도 되지 않아? 매너리즘 - 엘 그레코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아 바로크 미술 ·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평범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멋진 세상 사실주의 · 귀스타브 쿠르베
-당신 첫인상, 정말 별로였다고요! 인상주의 · 클로드 모네
-냄새에도 색이 있다면? 인상주의 이후 · 폴 세잔
-이게 뭐야? 도대체 뭘 그린 거지? 입체주의 ·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추상화는 낙서가 아니야, 추상화 ·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2. "이건 아니잖아."라고 세상을 향해 외친 화가들-
-정신 차려 이게 옳은 거라고! 자크 루이 다비드
-감정과 이성, 비슷하면서 다른 두 얼굴 테오도르 제리코 
-밉살스럽고 못난 왕을 그리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그림을 열심히 그렸을 뿐이지만 장 프랑수아 밀레
화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생각이 깊어서 작은 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지요. 더군다나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큰일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일 줄도 알았답니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많은 것에 대해 그림으로 반항한 화가들! 우리는그런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통해서 화가가 살던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루리 14세 죽음이후 왕, 귀족은 놀고 먹기에, 백성은 가난과 무관심에 빠져 사회가 엉망상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던 그리스의 이성적 정신, 그 정신을 이어받아 합리적으로 세상을 다스리던 로마의 정신을 부활시키고자 함. 말랑말랑한 색채와 예쁘고 즐겁기만 한 로코코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옛날, 고전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함. 19세기 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 널리 피지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신고전주의 최고의 화가였다. 그는 주로 호라티우스 형 제의 맹세나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같이 고대 로마와 그리스 시대에일어난 일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로마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떠나는 형제들과 아버지의 늠름한 모습을 마치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상처럼 단단하고 야무지게 그린 그림이다. 오른쪽 술에 잠겨 있는 여인들은 누이들과 엄마이다. 다비드는 남자는 조국을 위해 앞장서는데, 여자들은 가족이 당할지도 모를 나쁜 일들을 미리 이하면서 슬픔에 빠진 연약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평화와 행복만을 추구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사람을 계몽하고지 함. 행동하는 예술가

낭만주의 그림들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았다. 아픔, 고통, 분노, 고독, 슬픔 등이 그런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개인의 이런 감정을 하나하나 그려 내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낭만주의 화가들은 맑았다가 벼락을 치며 갑자기 비를 뿌리는 거칠고 변덕이 심한 자연을 그리는가 하면, 분노와 슬픔이 몰려드는 잔인한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로, 낭만주의를 처음 시작한 테오도르 제리코(Thédore Géricault, 1791~1824)라는 화가가 있다.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 호의 뗏목>은 매우 유명하다. 이 그림은 실제로 있었던 프랑스 군함 ‘메두사 호의 침몰 사건을 묘사한 것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국가 전체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리코의 그림을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것이다. 신고전주의 화가들과 낭만주의 화가들은 서로 싸우며, 자신의그림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한것은 비슷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찾아내자는 것이었다. 그 소중한 것을 신고전주의자들은 이성으로, 낭만주의자들은 감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프란시스 데 고야
프랑스 사람들이 에스파냐 사람들을 잔인하게 치형하는 장면을 그려 (1808년 5월 3일) 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총살당하는
‘에스파냐 남자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처럼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다. 남자의 하얀 옷은 그가 그만큼 순수하고, 아무 죄 없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들, 자마 이 모습을 눈 뜨고 볼 수 없어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에 비해 총을 든 프랑스군인들의 모습은 마치 로봇 병사 같다. 그들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동정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살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 같아 보일 뿐이다. 멀리 교회의 모습도 보인다. 늘 우리를 구원하고,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던 교회는 아무 말도 없다. 아마도 고야는이 그림을 그리면서 "하나님,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요?" 라고 울부었을지도 모른다.
고야는 왕실의 전속 화기로 있으며 시키는 대로 그림이나 그리고 살아도 충분히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속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다. 고야는말년에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을 어둡게 하는 인간들의 검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어보다.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함. 세상의 폭력과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그림을 많이 그림.
밀레-가난한 농부를 그림 속주인공으로 그림. 세상의 중심에는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듦. 구르베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밀레의 그림이 있어서 더욱 유명해진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가 있어서 더욱 멋있어진 파리
3. 내 삶은 비록 곤궁했으나, (어민 화가였을까?)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니라 이중섭 : 그리움을 안주삼아 눈물을 술처럼 마시며 산 사람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앙리 드 뚤루즈 로트레크 : 포스터제작으로 상업미술 발달에 큰 역할, 특징을 잡아 단순하고도 간결하게 표현. 라 굴뤼를 위한 우정의 그림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마음‘ 을 그리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 간 시대가 알아주지 못한 고독한 천재였다!
-비뚤어진 집에 살아도 세상이 나를 버려도 김정희: 세한도(제자 이상적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그림. 필요한 곳은 정확하게 그리고 그럴 필요가 어뵤다고 생각하면 자유롭게 그림.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얻울하며 고통스럽기까지 한 자신의 삶을 초라하고 일그러진 집으로 표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품을 잃지 않은 나무는 곧은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줌)
-세상에 대한 지독한 사랑 구본웅: 억눌린 풍선과 같은 자신의 마음을 불안하고 어둡고 거친 색으로 표현. 식민지 조선 땅에서 느꼈던 예술가로서의 분노와 정상적이비 않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무지한 사람들에 대한 붐노가 전해짐

4.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야(무엇을 그린 걸까?)
-꿈속 풍경을 그리다 살바도르 달리(기억의 고집:늘아진 시계-시감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삶을 이야기)
-여자들 미모 싸움에 끼어들지 마라 페테로 파울 루벤스(파리스의 심판)
-오호라. 이건 유다 아니겠소? 디르크 보우스
-그림 속 숨은 의미 찾기 안 반 에이크(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신랑의 자부심+기독교 정신을 잘 받들어 결혼 생활을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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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토의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에는 갖가지 표정이가득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떨어질 것 같은 감동이 전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름진 옷자락은 몸의 움직임까지도 느껴질 정도이다. 게다가 파란 하늘이라니! 중세 화가들은 그림의 배경을 흔히 화려한 황금색으로 칠하곤 했는데, 조토는 실제 하늘을 담은 파란색을 배경으로 칠한 것이다.
중세에 와서는 그림의 역할이 글자를 대신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생각해서 그리는 그림‘으로 변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에 잃어버린 그 전통이 다시 부활했으며, 그 가운데 조토 디본도네를 선구자로 본 것이다.
조토의 원‘ 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뜻으로 쓰인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 그 당시에도 르네상스 천재들이 이루어 놓은 것들보다 더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천재인스승을 모방하기보다는 기발함으로 승부를 거는 화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색깔이나 모양 등 모든 것에서 규칙과 비례를 만들어 내고,
또한 이상화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들며 우아함만을 강조하던 르네상스그림에서 벗어나 그들은 다소 기괴한 색, 또는 길쭉길쭉 늘어뜨린 희한한 선으로 인체와 세상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가 그린 라오콘을 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다. 이 그림은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카라바조는 성경에서 일어난 모든 일 또한 천국이 아닌 바로 우리가 살아 숨쉬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위대한 인물을 초라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어떻게 이런 걸 걸어 둘 수 있겠어!" 라며 퇴짜를 놓던 교회는 점점 카라바조의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 더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성실하고 검소하게 생활한 예수님과 마리아, 성인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로 인해 더욱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주는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명암법에 있다. 그는 밝은 부분은 지나칠 정도로 밝게 그리고, 어두운 부분은 실제보다 더 어둡게 그렸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역시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화가였다. 루벤스는 카라바조만큼 빛과 어둠의 차이를 심하게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의 동작은 르네상스 시대의 조용하고 고요함과는 달리 화려하고 장대하며 생기가 넘쳤다. 구불거리는 선 때문에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세월이 흐른 뒤 몇몇 미술학자는 르네상스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카라바조나 루벤스가 추구하던 이 새로운 미술을 비아냥거리며 바로크라고 불렀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구불구불한데다가정확하지 않아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기발함 때문에 우리는 그림 속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앞에서 "아, 멋져!"
"우아해." "차분해," "아름다워!" 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 바로크 시대의 그림 앞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그림 속 사람이 튀어 나와 네ㅣㅐ 어깨를 툭 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가.

로코코 미술-밝고 환하고 즐겁고 낙천적. 반발도 심함 그림의 주제가 늘 영웅이나 기독교의 신, 귀족과 영웅들의 무용담이기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귀스타브 쿠르베는 오르낭이라는 한 시골 마을 농부의 죽음을 엄청나게 큰 화던속에 그려 넣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쳐다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때로는 손해만 보고, 때로는 강한 자들에게 힘없이 당하며 사는 사람들은 ‘보통‘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랫동안그림 밖에서 서성거려야만 했다. 쿠르베는 그들을 그림 속 주인공으로불러들였다.
주변의 사사롭고 소소한 모든 것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거만하고 거들먹거리는 화려한 큰 힘을 이겨 내는 그런 세상, 그 멋진 세상을 우리는 쿠르베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다.

모네 인상, 해돋이〉 1872년, 캔버스에 유채, 68×48cm해가 막 돋는 바닷가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리다 만 듯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거친 붓질각도 우아하거나 고상하지 못해, 당시 파리 살롱이 정한 좋은 그림의 기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 그림은 인상주의를 꽃피운 최고의 그림 가은데 하나로 평가받작했다.

피카소의 그림은 세잔을 많이 닮았다. 가만히 앉아서는 보이지않는 모습을 때로는 서서, 때로는 앉아서 보고 그림을 그린 세잔처럼 피카소는 아예 그리고자 하는 대상 뒤로 성큼성큼 몸을 움직여 관찰한 뒤 한 화면에 펼쳐 놓은 것이다. 따라서 괴물 같은 얼굴로 오른쪽 귀퉁이에앉아 있는 여자는 목이 꺾인 것이 아니라 뒷모습과 앞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이다.
피카소는 그림이니까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고 싶어 했다. 그림이니까 원하는 대로, 어떤 모습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그렸던 상상화가 그래서 재미있던 것이 아닐까? 사진이 아니라 상상화이므로그림 속에서는 팔이 4개 달린 내가 한 손으로는 숙제를 하고, 두 손으로는 게임을 하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엄마가 깎아 준 사과를 먹는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물론 머리는 컴퓨터화면을 향해 있지만, 몸은 엄마를 향할 수 있다.

칸딘스키의 추상화도 가장 본질이 되는 것만 남긴다는 점에서 몬드리안과 다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림은 ‘선과 색이 가장 본질이 되며 그 본질이 되는 ‘선과 색‘ 만으로 보는 사람과 그리는 사람의 마음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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