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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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입담가 황석영 작가가 먹는 이야기를 풀었다. 한동안 대한민국에 불어온 먹방 열풍에 내로라하는 쉐프와 작가들이 이미 먹는주제로 책을 다 내놓은 마당이라 제 아무리 황석영 작가라도 요리와 밥친(밥먹는 친구)이야기만으로 더 쓸게 있을까 싶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거장은 거장이구나 싶다.

 

   먼저 그가 차린 밥상을 들여다보자. 작가의 고향이 이북인 덕에 노티같은 지금은 맛보기 힘든 이북요리부터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나는 찌고 굽고 말린 생선과 나물, 삭히고 묵힌 장아찌와 젓갈, 고소한 잡곡밥과 얼큰한 찌게에 감옥서 만든 밀주까지 곁들여졌다. 여기에 스파게티와 피자, 빵처럼 익숙한 독일과 스페인, 이탈리아의 요리들과 이국의 가정식들이 함께 차려져 있다. 그 널찍한 밥상만큼이나 함께 먹을 것을 나누었던 사람들도 많았으니 작가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투옥 당시 잔일을 봐주던 소지부터 감방동기, 가족과 친구, 첫사랑에 김일성 주석까지 갖은 인연의 사람들이 그의 밥상에 앉았다. 이렇게 요리와 사람이 가득하니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실내에서는 다른 제소자들 눈이 있으니까 '만기방'이라고 부르는

  석방 이틀 전에 나가서 묵는 독립 사동에 가서 연탄아궁이 불에다

  부참개를 부쳤다. 머리 위로는 싸락눈이 풀풀 날리고 

  우리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가린을 프라이팬에 녹여

  김치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부어서 부쳤다. 

  역시 김치부침개는 잘 익으면 가장자리가 아삭거리고 고소하고 제일

  맛이 있다. 거길 떼어 먹다가 바라보니 준식이 눈에 눈물방물이

  고여있다가 툭 떨어진다.

  "왜 그래. 뜨거워서 그러냐?"

  "아니요?

  "그럼 뭣 땜에 그래?"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밥을 먹는 것은 인간의 본능의 행위이고, 결국 몸의 기억이다. 그래서 밥을 함께 먹은 사람과 그 때의 풍경은 몸이 기억해 잘 잊혀지지 않는다. 작가가 불러들인 달고, 쓰고, 시고, 짠, 때로는 혁명과도 같은 맛의 기억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기에 작가는 진정한 밥도둑은 나눠 먹는 밥이라고 말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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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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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책장을 덮고 한동안 제목을 다시 보았다.

 

제목 속에 소설의 모든 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다 읽고야 알았다. 책을 놓을 때까지 한 귀나 겨우 맞추었을까 사방에 흩어져 있던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남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내가 했던 이동 양봉이 아주머니의 미래가 되고, 지하철과 버스, 셔틀버스를 타고 영훈이를 추모하러 가던 길이 남자를 추모하러 가는 길이 되는 풍경. 확고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가진 모두가 피해자인 인물들이 그 확고함으로 가해자가 되는 모습. 결론은 남자의 말처럼

 

 

인간이라는 건 결국 패턴

 

   

이라는 사실이었다.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선도, 악도 아닌 패턴의 문제라는 것을,

반복되는 패턴의 사슬을 어느 지점에서든 잘라주어야 끝난다는 것을.

결국 남자는 자신의 피로 그 사슬을 잘라 주었다. 아주머니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증명하던 스크랩북을 버리고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왔고, 여자의 엄마는 바람난 남편을 기다리던 허름한 집에서 나와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로 들어왔다. 여자는 어디로 왔을까. 책 초반에는 가장 굵은 패턴의 쇠사슬을 스스로 발에 채운 사람을 아주머니로 보아왔는데, 어느 순간 그 사슬을 차고 있는 사람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중 누구와도 닮지 않은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으나, 그 사실을 알아주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가족들 대신 가면을 쓰고 학교와 친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연극마저 지칠 무렵 자포자기해 평범한 직장인이 된 여자. 불행한 운명을 가진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만 세계를 기억하는 여자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보람에게, 그리고 남자에게조차 또 다른 모습의 영훈이자, 아주머니였다. 결국 같은 패턴을 가진 여자와 아주머니는 스스로 시지프스가 되어 과거라는 돌을 굴리며 산 정상에 올라가, 정상에 있는 남자에게 폭력과도 같은 고해성사를 했던 것인지도. 결국 남자의 죽음으로 여자와 아주머니, 여자의 엄마와 영훈의 아버지, 편집장과 시간여행자와 역사도둑의 작가는 모두 돌을 굴리는 것을 멈추었고, 여자는 자유나의 시간을 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름답고 속물인, 사랑할 가치가 있는 여자인지 묻게 되는 데이지를 위해 스스로의 죽음을 예감하며 파티를 여는 개츠비를 바라보듯이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라고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나는 이 책이 왜 나의 마음에 남는지를 알 수 있었다.

 

너는 누구였어. 도대체?

 

여자의 물음처럼 우리는 과연 누구이며, 언제를 살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이 세계에,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시간과 공간이 일그러지는 그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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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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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다운 명불허전 강신주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 책 속에 소개된 책을 찾아 읽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어 애서가들은 필히 보시길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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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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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그러나 인간이 누구나 마주치는 외로움과 좌절들을 조용히 안아주는 포옹같은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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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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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저자의 후광이 크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저자를 먼저 보지 않을 수 없다.

독특한 자신만의 문학세계로, 흔히 말하는 믿고 보는팬들을 전 세계에 가지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 인기만큼 많은 비난도 전 세계적으로-받고 있다. 뭐 그는 그런 비난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그가 그렇게 비난 받는 이유를 보면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시대적 고민이 없다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인터뷰집은 조금은 하루키적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처음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에 대해 들은 정보는 이 책이 소설도, 수필도 아닌 사린가스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를 한 인터뷰집이라는 것이었다. 하루키의 필력도 알고, 사린사건이 엄청난 사건인 것도 인정하지만, 같은 사건을 겪은 일반인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그것도 6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인터뷰만을 싣다보면 스무 명쯤만 가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책이 도착했을 때는 두께를 보며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첫 장을 넘기고 한참이 흐른 후 나도 모르는 사이 마지막장이 끝나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삶과 철학, 그래서 사건을 바라보는 모두 다른 태도와 사건에 대한 정의, 바뀐 삶에 대한 감정 같은 것들을 각각의 이야기로 쏟아져 나왔다. 백 명이 백 가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인데도, 이런 제 각각의 반응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지금까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가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느끼기도 전에, 언론이 먼저 사실과 관점, 내가 느낄 감정까지도 편집하고, 정리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도식화된 패턴을 피하기 위해 하루키는 그 60여명의 피해자들의 감정을 정리하는 대신, 한 명 한 명에게 깊숙이 다가가 그들의 평범한 하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고, 어떤 혼란 속에 있는지를 들어주었다.

 

증언자의 개인적인 배경 취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피해자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명확히 부각시키고 싶어서였다. 거기에 존재하는 한 인간을 얼굴 없는 많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에 그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p. 21

 

나는 이것이 하루키의 힘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시대정신이라는 큰 가치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자신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은 것들을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내가 이 책에 대해 느낀 놀라움을 잠재우고 있을 무렵, 2편이 나왔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가해자가 속해 있던 옴진리교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더그라운드2 약속된 장소에서는 내게 1권이 준 충격의 세 배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자신의 두 가지 물음으로 대답했다. 하나는 옴진리교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 다른 하나는 결국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그것을 일으킨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게 아닌가하는 물음.

어쩌면 평범하고 당연하지만, 우리가 지나쳐갔던, 혹은 지나쳐가야만 했던 물음으로 시작된 2권은 인터뷰의 보조자 역할 정도만 했던 1권과 달리 하루키의 색깔과 그가 가진 의문들을 더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물음 속에서 읽어 나간 그들은 아주 특이한 사람들일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평범했고, 역설적이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선한 동기가 확실한 사람들이었다.

 

개중에는 이 사람은 세간에서 잘 살아갈 수 없겠다싶은 사람도 분명 있었습니다. 일반의 가치관에서 애당초 완전히 벗어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인구 중 몇 퍼센트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렇게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해쳐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언더그라운드2. p299 하루키의 말 중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배제시키면 사회가 건전해진다고 믿고 있어요.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언더그라운드2. p300. 하야오(정신과전문의)의 말 중

 

 

어쩌면 하루키의 표현대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 때 우리 모두는 정의라는 마차에 올라타서 가해자를 비난하는 쉬운 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본질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것은 이성적, 감정적으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품을 들이지 않고는 하루키의 말대로 사린사태와 같은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다. 비단 일본만의 일이 아니라 자살률이 몇 년째 1위이고,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매사에 좀 더 성실하게 깊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조금쯤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소통할 수 없어 약간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표현 수단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해 자존심과 열등감 사이를 격렬하게 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위험성을 내포한 컬트 종교 사이에 가로놓인 한 장의 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얇을지도 모른다.

언더그라운드 2. p. 333

 

온전히 하루키만의 세계로 이루어진 그의 소설과 수필에 비하면 이 책은 인터뷰가 대부분이라 그의 색깔은 희미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작품들보다 그가 세상을 향해 가지는 질문들과 그의 색깔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단편적인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어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해도 좋다는 것과 언더그라운드2 마지막 부분의 하루키와 정신과의사인 하야오의 인터뷰에서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좋은 말들이 많은 것도 장점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언더그라운드를 읽으며 대구지하철 참사가 자꾸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희생자의 숫자로 그 비극성을 따질 수는 없지만, 사린사건의 사망자가 12명인 것에 비해 대구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는 192명이나 된다. 그럼에도 당시 기사들을 찾아보니 하루키가 말한 언론의 패턴들만이 있을 뿐 진실도, 고민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있음에도, 아직도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묻는 진지한 질문이 전무하다는 것이 슬프다. 늦지 않게 우리도 묻고, 고민하고, 개인의 입장에서 기록을 남기는 일들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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