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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흔들거리며 - 탁현민 산문집 파리에서 모그바티스까지
탁현민 글.사진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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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자마자 주문했다.

콘서트 현장에서 보았던, 그 약간은 건들거리고, 자신만만했던 탁현민...그의 오늘이 궁금했다.

 

단 하루였지만, 참 많은 것을 바꾼 하루였다.

그가 그랬듯  나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프고, 좌절했던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의 '좌절'의 시간과 극복을 생각하며, 이 책을 펼쳤고.

아놔. 웃었다.

 

그는 파리의 한 카페에서 티스푼을 훔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가 하면,

미용실에서 (물론 옷가게인줄 알았다지만) 손님들이 걸어둔 옷을 파는 걸로 착각해 구경하고 다니거나, 

반나체로 '강제출국' 보다 더한 '강제자살'의 위험을 겪으며 베란다에 서 있고 있었다.

 지인이 지갑을 잃어버리면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정도로 생각하는

이 뻔뻔하고, 염치없는 남자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생각할 뻔 했다. 괜히 걱정했네. 아오 빡쳐!

 

물론 그는 괜찮친 않았다. 의심하지 않았고, 간절했는데...

 

 

그런데 왜, 모든 간절한 사람들은 왜 이리 초라해 보이는 걸까?

간절함은 사람을 왜 이렇게 추레하게 만드는 걸까 싶더니만,

갑자기 정말 황당하게도 눈물이 났다. ...(중략)...

토요일 오후 노트르담 성당에서 였다.

  

졌으니까.

 

 

 이겨도 멋지게 이기고, 져도 멋지게 져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막상 지고 나니 세상에 멋지게

 지는 것 따위는 없었다. 지는 것은 그저 슬프고, 처량하고, 궁상맞고, 후회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그래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의 시간과, 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들,

왜 졌는지를 생각해보는 것까지 그 모든 절망의 시간들은 다만 고되고, 고되다.

 

 

그의 프로덕션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책임을 이러저리 넘기며 상처를 후비고, 어쨌건 졌으니까.

기분 좋을리는 없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이 책은 재밌다. 힐링을 강조하며 나온 그 어느 책보다 나에게 힐링이 되었다.

김어준을 닮은 프랑스 아줌마의 뒷모습 사진은. 그야말로. 빵 터진다.

웃음이 있는 절망을 아는 그이기에.

탁현민 그는 괜찮아 보인다. 함민복의 시처럼,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는, 흔들려서 덜 흔들릴 수 있었던 나무처럼

그에게는 단단한 중심이 있고, 그래서 그의 글은 아픈 듯 하지만, 피식 웃기고, 껄껄 웃긴다.

건들거리던 그가 흔들거리는 모습도 볼 만하다. 괜찮은 것 같다.

 

의외로 여느 작가 못지 않은 필력이 있어 , -신춘문예를 준비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것도 웃어야 할 대목아닌가- 읽는 내내 지루할 틈 없이 읽었다. 이 기회에 소설 하나 쓰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고 존 레논의 'imagine' 을 들었다. 우리는 금메달은 못 땄지만, 들을 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간만에 힐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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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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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시간이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나는 아주 오래전 읽었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고 있었다.
한 노인이 먼 바다로 나가 힘들게 청새치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에게 청새치의 살점을 모두 뜯기고, 빈 뼈만 달고 돌아와 소년의 위로 속에 잠이 든다는...누구나 아는 간단한 줄거리와 고전치고는 짧고 쉬웠던 문장을 기억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잡았던 나는 뜻하지 않은 감동에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히다 결국 책을 덮을 때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분명 같은 책인데,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달라져 나를 울게 한 것일까?

책의 모습과 번역도 달라졌지만, 역시 가장 달라진 것은 ‘나’였다.
오래 전 내가 이제 겨우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두 마리를 잡아 오던 ‘소년’이었다면, 지금 나는 바다에 나가 외롭게 싸워본 적이 있는, 내가 가졌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허망하게 잃어 본 적이 있는 ‘노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내고 난 지금에서야
나는 헤밍웨이가 노인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은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말한다.
‘자기가 이기고 싶다는 마음만 확실히 먹으면 상대가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에 막혀 망설이는 이에게
‘이보게 생각일랑 집어 치우게, 이대로 항해를 계속 하게, 그러다 일이 닥치면 그 때 맞서
싸워.
’라고

절망하는 이에게
‘희망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뿐만 아니라 난 그건 죄악이라고 믿어.’ 라고.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는 나에게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걸로 뭘 할 수 있을지 그거나 생각하도록 해.’ 라고 충고해 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잡은 청새치가 뜯겨져 나간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이 모든 것들이 오래가지 않는 꿈인 것을 알면서도 노인은 자신에게 말한다.
“하지만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
.” 라고...

그리고 그 모든 말 중에 나를 가장 울렸던 말은 참 특이하게도, 홀로 바다와 싸우던 노인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그 애가 있으면 좋으련만...”이었다. 바다와 싸우는 한 위대한 인간이 필요로 한 것은 

크고 좋은 장비도, 큰 배도 아닌, 그저  내 곁에 있어주고 나를 믿어주는 작은 '소년'이었다.  

 

아침에 소년을 깨울 때도 아이가 안쓰러워 차마 흔들어 깨우지 못 하고 소년의 한 쪽 발을 살며시 잡고 기다리던, 그마저도 안타까워 깨어난 아이에게 ‘미안하다’ 고 말하는 노인의 마음과,

상처입은 노인의 손과 뼈 밖에 남지 않은 고기를 싣고 오며 더 상처 입었을 노인의 마음이 아파,

커피를 가지러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던 소년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소년을 따라  

자꾸 자꾸 울었다.

 

인간을 패배하지 않게 하는 것은, 그 어떤 위대한 정신과 엄청난 물질이 아니라 

바로 그 곁에 있는 인간의 작은 온기임을 헤밍웨이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는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를 민트잎을 직접 따 만들어 마시며,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패배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이 ‘아주 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 노인’을 주고 떠난 것은 아닐까.

 

새벽에 책을 덮으며 나는 노인과 소년, 그리고 그들을 만든 한 위대한 작가에게 건배를 보냈다.

그리고 봄 , 어릴 때 읽었다고 생각(?)했던 고전들을 다시 펼쳐 보며,

고전의 바다로 나도 노인처럼 청새치를 잡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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