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 : DMZ의 숨겨진 마을
임종업 지음 / 소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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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중국 연길 일대 여행이 떠오른다. 그 직전만 해도 단동을 넘어오던 꽃제비들이 우리가 밟고 서 있던 자리에서 많이도 잡혀갔다고 했었다. 김정일이 이동하여 중국 방문했던 다리도 멀리서 보고 가슴이 오묘했던 기억이 있다. 지도로 따지면 우리나라 제일 꼭대기에서 북을 봐라봤던 음울한 풍경이 펼쳐지고, 두만강에서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가 우리에게 겨누는 총부리에 움찔했던 경험도 생각났다. 대성동은 DMZ이고 내가 방문했던 곳은 완전 반대편 저 꼭대기이지만, 책 중간에 나오는 철책만 봐도, 이 땅 너머 보이는 저곳 풍경 사진만 봐도 자꾸 기억이 중첩된다. 지도만 봐도 묘하다.


대성동 이야기는 그 마을 이름은 몰라도 티비에서 접한 기억이 있다. 커다란 태극기를 보니 예능에서 봤던 그 곳이 맞다. 대한민국 사람이라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민다. 도토리를 줍다가 북에 다녀온 분의 이야기도 이해가 되면서도 아프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아니라 들어갈 수 없는 다리가 된 도끼만행 사건은 여전히 끔찍하다.


이 책에 대한 기대는 그곳을 사는 분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었다. 기대와 달리 이 책은 왜 이 마을이 대성동인지, 이장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어떤 평면도의 집에서 이들이 살고 있는지, 땅문서를 누가 가졌는지 부터 시작한다. 아니 왜 DMZ가 몇 키로 미터인지, 미군장교가 영어를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했는가. 그런데 읽어보니 그래서 더 좋았다. 무엇인가 일화들을 통해 어설픈 감동을 얻기보다는 삶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며, 사실적으로 이해가 되어 숨겨진 이 마을이 실감이 난다. 강화도 교동 망원경 저편에서 고기를 잡는 북한인들을 보던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들을 잃고, 아픔을 겪었던 할머니들의 증언을 뒤쪽에 실은 것이 현명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사실은 이 분들이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는지 궁금했었다.


저자가 사용하는 어휘와 문체는 참 멋지다. 나로선 알 수 없는 고급진 단어들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신기한 것은 글을 읽으며 참 곱다라는 느낌이다. 이런 문체에서 왜 곱다라는 느낌이 날 수 있는지 아이러니 하지만 그래서 잘 읽힌다. 옛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대성동에서 숙식을 하지 못하고 방문하며 취재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면서 저자는 얼마나 벅차고 신났을까 느낌도 든다. 사진 속 대송동 집들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세련되었고, 시골 같으면서도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르다. 자유의 마을이라는 이름과 달리 자유스럽지도 않은데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들은 끝까지 그 곳을 지킨다. 나라에 평화의 협정이 맺어져 마냥 기쁠 것 같아도 그들은 새로운 근심이 생긴다. 이런 일치되지 않는 여러 가지 면들이 저자에게는 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큰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접하기 전 가졌던 나의 궁금증들이 대부분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접한 것은 나에게 큰 이득이다.


왜 인지 나에겐 잘못된 시각적 인상들이 있었는데 1번 국도와 의주로 그것 중 하나이다. 난 왜 철도길이 동쪽이라 믿어 왔을까. 이 책 덕에 참으로 안심이 되는 지도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부디 이 길이 연결되어 비행기 없이 유럽까지도 쭈욱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저자의 말처럼 기정동을 직접 방문하여 이 책의 뒷부분이 마무리되길 바란다. 옛날에는 이런 비무장지대 마을이 있었데. 이런 말을 웃으며 편하게 할 수 있기를 진정 바래본다. 힘들었던 시기를 잘 겪어 내오셨고, 아직도 겪고 계시나 이런 부분을 통쾌히 오픈하고 이야기해주시며 기쁘게 살아가시는, 그래서 여러 가지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해주신 대성동 마을 그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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