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오다 마사쿠니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 봤을겁니다. 책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벗어나 방안을 휘젓고 다니며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그런 상상.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에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어 자리를 잘 배치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짝짓기를 해서 새로운 책을 낳게 된다는 그런 상상입니다. 정말 발칙하기 그지 없습니다. 책들이 밀회를 거듭하고 대를 잇는 자식을 낳기까지 하다니 그 발칙함에 웃음이 납니다. 독특하고 발칙한 소재를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감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이야기는 히로시가 외조부 후카이 요지로의 이야기를 아들 게이타로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정치 철학자 후카이 요지로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집 곳곳이 책으로 넘쳐납니다. 자꾸만 책이 늘어나는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요지로. 다른 이유가 아니라 책들이 자신도 알지못하는 사이에 자식을 낳아서 그렇다는 겁니다. 요지로의 농담인듯 진담인 실없는 이야기에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가 있었으니 요지로의 아내 미키였습니다. 요지로와 미키의 모습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소한 이야기도 열심히 들어주고 진심으로 웃는 부부의 모습은 내가 꼭 닮고 싶은 모습이었습니다. 히로시가 초등학생일 때 외조부 요지로는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의 책 속에서 우연히 노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노트 안에는 후카이가의 갖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경계의 이야기가 줄곧 펼쳐집니다. 책의 도입부분에서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면서 흥미롭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빼곡하게 채워진 서재를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한 권, 한 권 책등을 훑어보다보니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책이 몇 권이나 있습니다. 정말 내가 사긴 산걸까 싶을정도로 낯설기만 한 책들. 어쩌면 내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는건 아닐까 괜스레 상상해보게 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재의 책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면 정말 좋겠다는 쓸데없는 상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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