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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법 - 경전선을 타고 느리게, 더 느리게
김종길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6월
평점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어를 꼽자면 '빠르다'가 아닌가 싶습니다. 외세침략의 세월을 거치고 전쟁까지 겪으면서 폐허가 되다시피한 나라가 반세기만에 눈부시게 빠른 경제적인 성장을 이뤘고 무엇이든 빨리 빨리 하는 것에 익숙해져있습니다. 그로 인한 폐단도 사회 곳곳에 흘러 넘치지만 나조차도 빠른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혹여라도 느리게 진행되는 일이 있으면 갑갑해져 버리고 맙니다. 인터넷도 빠르고, 택배도 엄청 빠르고, 주문 배달 음식도 엄청 빠릅니다.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돌아갑니다. 빠른 세상에 익숙해져 있지만 가끔은 가만히 숨고르기가 하고 싶어집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종일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조용한 숲 속을 거닐거나 아무 버스나 올라타서 하염없이 창 밖 풍경을 보기도 합니다.
기차도 빨라졌습니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비둘기호... 친숙한 이름으로 불렸던 기차들도 KTX의 등장으로 점점 멀어져갑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빠른 KTX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기차의 배차도 KTX가 다수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골의 간이역들이 사라져 간다는 안타까운 소식들도 들려옵니다. 효율성에 밀려 작고 조용한 시골역들은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매력을 특화시켜서 살아남는 작은 역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남도 여행법> 속에는 그런 작은 역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시간이 멈춘듯 한 작은 역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영화 세트장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그곳을 조용히 걷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경전선을 따라갔던 책읽기는 KTX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아직은 사람 냄새,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차여행이었습니다. 경남 삼랑진에서 전남 광주 송정까지 약 300킬로미터의 거리를 경전선은 5시간 15분이 걸려 달립니다. 시속 300km인 KTX와는 비교가 안되는 시속 30km의 경전선입니다. 속도가 느린만큼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봉화마을의 진영역, 역장과 역무원이 차곡차곡 심은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는 북천역, 수목원이 이름이 되어버린 진주수목원역, '농부네텃밭 도서관'이 있는 진상역, 윤동주의 유고가 숨겨져 있던 정병옥 가옥이 있는 옥곡역.... 수많은 작은 역들이 부디 사라지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고스란히 지닌 작은 역으로 살아 남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