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3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시작이 무척 좋아서 그 뒤가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학기 초 첫시험을 평소보다 훨씬 훌륭하게 치러낸 후 선생님과 부모님의 기대치가 높아져서 부담감으로 버거웠던 시절이 그랬습니다. 나를, 내가 가진 소양보다 훨씬 좋은 사람으로 봐주는 새로운 사람 앞에서는 어쩐지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말투도 조신해집니다. 잘했기데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어지간히 해서는 칭찬 받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다는걸 알기에 생기는 부담감일겁니다. 야구선수가 첫타석에 홈런을 친 후 다음 타석에 들어서면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가 되겠지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들이 제겐 그랬습니다. 그녀의 첫작품 <고백>이 주었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읽어도 <고백>이 주었던 인상을 뛰어 넘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계속 몇몇 작품들에 실망해서 혹시 첫작품이 어쩌다 나온 홈런이 아니었을까 슬슬 의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작가 본인도 그 부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나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소한 일에서도 그런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데 하물며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은 소설을 내 놓은 작가에게는 그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작가는 "<고백>이 내 대표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말해왔고 이 작품으로 그 바람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인노시마에서 18년, 퉁가에서 2년, 아와지시마에서 13년... 인생의 대부분을 섬에서 살아 온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고 하는 <먕향>은 섬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 6편이 담겨 있습니다. 섬에서 귤밭을 일구며 살다가 야반도주로 섬을 떠났다가 25년 만에 유명한 작가가 되어 섬에 돌아온 후 밝혀지는 비밀 이야기 <귤꽃>, 실종된 아버지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모자 앞에 등장한 친절한 아저씨의 비밀 이야기 <바다별>, 반에서 벌어진 왕따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는 초등학교 교사에게 중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제자가 찾아와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빛의 항로>....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열어 보는게 꽤나 재미있고 흥미로웠습니다. "억지로 아무리 써봐도 침울한 상태에 빠져들 때는 비판의 목소리밖에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쓴 걸 읽지 않으면 그만 아냐! 라고 소리 지르고 싶어졌습니다”라고까지 말했다는 미나토 가나에가 이 작품으로 조금은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여전히 미나토 가나에의 대표작은 <고백>으로 남아있지만 그녀에 대한 의심을 지울만큼의 인상은 준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