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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ㅣ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요즘 90년대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자주 들려옵니다. 얼마전 케이블 방송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응답하라, 1997'이 그랬고 요즘 종종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90년대 아이돌들이 다시 뭉친 '핫젝갓알지'가 그렇습니다. 9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다녔던 나로서는 그 시절이 떠올라서 반갑기만 합니다. '맞아 맞아, 그때는 그랬지...' 잠시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 혼자 킥킥거립니다. 만날 어른들이 '아이구...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시던 말씀을 제가 되뇌이게 되더군요. 정말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십 년이 되어간다니 놀랍기가 그지 없습니다. 서태지, HOT, 젝스키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박한상 살인사건, IMF.... 그런 단어들을 들으면 그 시절의 '나'가 생각납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의 '나'는 누구를 만나고, 무슨 고민을 하고, 무엇 때문에 행복했었는지 사진첩처럼 주르륵 생각이 납니다.
정이현 작가의 <안녕, 내 모든 것>에는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세미, 준모, 지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부모는 결국 이혼을 하고 엄마는 빚 때문에 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고 아빠는 낯선 친가에 자신을 맡기고 자취를 감춰서 낯설기만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세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욕설을 뱉는 뚜렛 증후군을 앓고 있어 결국 학교를 자퇴하는 착하디 착한 준모...
한 번 보거나 듣는 것은 모조리 기억하게 되어 잊고 싶은 기억도 잊지 못해 괴로운 지혜...
그들은 서태지의 음악을 들으며 고단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한 그들은 망망대해에 동동 떠 있는 외로운 섬처럼 셋이서만 똘똘 뭉쳐다닙니다. 각자 시절의 고단함을 견뎌내며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어쩌면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세미와 준모, 지혜에게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내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시절의 감성을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조금 더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었습니다. 세미, 준모, 지혜와 다른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어떻게 다가갔을지 궁금해집니다. 혼란스러웠지만 파릇파릇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그 시절의 내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