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봤어

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김려령 작가의 작품 <완득이>에 이어 <우아한 거짓말>까지 좋은 작품이었고 두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작품에서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보여주었는데 이번 소설은 "놀라운 변신"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운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었습니다. 평소 애정 소설을 그다지 애정하지 않는 나지만 김려령 작가의 작품이라니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기쁜 마음으로 <너를 봤어>를 만났습니다.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소설가 '정수현'은 유수한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고 출판사 사장의 소개로 결혼을 합니다. 사회적인 명망과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내까지 남부러울것 없어 보이는 수현이지만 그에게는 지독한 아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의 죽음, 끊임없이 악다구니를 부리는 어머니와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형.... 그리고 아내는 주위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차갑게 구는 얼음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수현은 후배 작가 영재를 처음 보는 순간 진정한 사랑을 느낍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런 사랑... 영재를 만나 행복을 느끼지만 수현은 수많은 죄책감에도 시달리게 됩니다.

지독한 사랑과 폭력에 대한 영화나 소설은 세상에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그 지독한 사랑에 깊이 공감하며 절절한 마음을 느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사랑에 전혀 동화되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나는 대체적으로 가랑비에 옷젖듯 서서히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어 가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사랑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내 감정을 적셔버려서 내가 그들인지 그들이 나인지 모르게 동화되어 가는 그런 작품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려령 작가의 <너를 봤어>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들의 지독한 사랑에 전혀 동화되지 못한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으니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몹시 열정적이거나 몹시 차갑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하는 작품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미지근한 느낌이었습니다. 무언가 하다가 만것 같은 느낌.... 몽환적인 모호함이 아니라 이도저도 아닌 모호함이 가득한 느낌.... 어쩌면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이 컸을지 모릅니다. <너를 봤어> 속에 흠뻑 빠져서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 싶었는데 멀찍이 뚝 떨어져서 그들 곁에 다가가지 못해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