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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평점 :
우리 동네 주위를 돌아다니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모두 똑같은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모습은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요즘은 그나마 있던 단독주택들을 허물어 똑같이 생긴 빌라를 여기저기서 지어대고 있어서 점점 더 멋없고 답답한 동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동네 이야기만은 아닐겁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도시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합니다. 똑같이 네모 반듯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가득한 도시처럼 삭막하고 답답하고 멋없는게 있을까요.
간혹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 가보면 차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을 골목 골목에 독특한 모습을 집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번듯하고 멋지게 지어진 집들은 아니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듯 합니다. '집짓기'에 관심이 많아서 가끔은 일부러 그런 동네를 찾아가 골목을 누비면서 집들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좁은 골목을 향한 창 밖에 작은 화분을 나란히 내어 놓은 집, 허리 높이 밖에 안되는 담 안으로 누렁이네 집이 보이는 집, 얼기설기 나무판으로 덧대어 추위를 막아내고 있는 집, 내 눈높이 쯤에 위치한 어느 집의 장독대, 아무리봐도 입구가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집....
이상하게도 그런 집들을 보면 상상력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저 집에는 화초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살고 계시지 않을까, 저 누렁이는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까,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는데 저 집은 판자는 몇 겹이 늘었겠구나, 장독대에는 어떤 장맛이 깃들여저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집들을 만나는건 참 즐겁습니다. 내멋대로 상상하는 즐거움도 좋지만 정말 그 집이 간직한 이야기를 듣는것도 매우 즐겁습니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에도 이야기를 간직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기증한 이진아 기념도서관, 아픔과 치유의 공간을 함께 품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세계적인 건물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얽힌 웃지 못할 건축주와 건축가의 이야기, 생각만해도 슬프고 가슴 아픈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묘역, 아버지와 아들의 광기어린 집착의 결과물 아그라포트, 보는것만으로도 즐거운 창덕궁의 정자들... 한 편 한 편 인상깊지 않은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이렇듯 이야기를 품은 건축물을 만나는건 즐거웠습니다. 그 중에는 내가 가서 본 적이 있는 건축물도 있고 알고는 있지만 가 본 적은 없는 건축물도 있고, 처음 알게 된 건축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본 적이 있었던 없었던, 알고 있었던 모르고 있었던 건축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상 깊었고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건축물을 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아름답다, 잘 지어졌다 등 단순한 감각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그 건축물이 지닌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