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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순간에 문득, 그야말로 문득 사람들이 정말 치열하게 사는구나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날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것도 아니었는데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열심히, 치열하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걸 깨닫고 새삼스럽게 깜짝 놀랐었습니다. 수많은 상점들도 모두 '돈'을 벌어 살아가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구나,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도 '돈'을 벌어 살아가기 위해서 저리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아마 그 순간이 내가 조금 어른이 된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꽤 오랫동안 '학생'의 신분이었던 나는 학생의 특권으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는걸 그전까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에 문득 무슨 깨달음처럼 나를 흔들었습니다.
서른이 넘은 지금이야 '생활'이란게 얼마나 치열한지, 돈을 번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 백수나 퇴직자, 실직자가 등장하면 그렇게 마음이 쓰일 수 없습니다. <굿바이 동물원>에도 실직자 영수가 등장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실직자의 신분이 되어버린 영수는 부업으로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사나이는 세 번 웁니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마늘 깔 때... 마늘까기에 이어 곰인형 눈 붙이기로 부업을 바꿉니다. 본드로 곰인형의 눈을 붙이다가 우연히 환각을 느끼고 점차 본드에 중독되어 슈퍼 히어로가 되었다가 미녀를 구출하는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영수에게 마늘까기와 곰인형 눈 붙이기 등을 소개해줬던 부업계의 큰 손 '돼지엄마'에게 공무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물원 일자리를 소개받습니다. 체력검사를 통과하고 동물원에 취직된 영수가 하는 일은 '마운틴 고릴라'입니다. 마운틴 고릴라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마운틴 고릴라' 그 자체가 영수의 일입니다. 세렝게티 동물원의 마운틴 고릴라가 바로 영수입니다.
세상살이의 치열함을 깨닫고 난 후에는 영수와 같은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갑니다. 가족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선물하고 싶은 가장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마운틴 고릴라의 털옷을 입고 뒤를 힐끗 돌아보는 표지 속의 영수는 처연한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이 세상은 세렝게티 동물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루한 일상을 슬픈 웃음으로 보여주는 <굿바이 동물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슬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걸 영수와 그들의 이야기로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강태식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