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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ㅣ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꽃이 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하는데 벚꽃이 지는 모습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사라락 불어오면 꽃잎이 후두둑 떨어지며 날리는 모습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볼만큼 아름답습니다. 한겨울에 날리는 눈꽃송이처럼 그렇게 펄펄 날리는 벚꽃은 정말 예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벚꽃은 피어있는것보다 지는게 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치이는게 싫어 일부러 벚꽃 구경을 가진 않지만 길을 가다 벚꽃 나무를 보면 잠깐 멈춰서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려보기도 했습니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의 표지에도 아름다운 꽃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내 눈에는 벚꽃 나무로 보이는데... '꽃', '봄' 같은 단어가 제목에 들어있으니 벚꽃이 맞을거라 생각합니다. 표지 커버를 벗겨보면 지팡이를 든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요.
연작 단편집인 <꽃 아래 봄에 죽기를>에는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작고 소박한 맥주바 '가나리야'를 배경으로 마스터인 구도 데쓰야가 중심이 되어 손님들과 수수께끼같은 일들을 풀어나갑니다. 가나리야를 찾는 손님들은 마스터인 구도에게 무슨 이야기든 하게 됩니다. 구도는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고 모든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면서 손님들에게 벌어지는 수수께끼같은 일들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혼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은 하이쿠 시인의 감춰진 사연을 찾는 이야기, 지하철 역에서 빌려주는 책갈피 속에 들어있는 가족사진의 사연을 찾는 이야기, 빨간 손을 가진 살인자를 찾아내는 이야기, 몸이 불편한 여인과 과거를 숨겨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 여섯 편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작가가 요리사 출신이라 그런지 가나리야에서 내놓는 안주가 맛있게 표현됩니다. 이런 맥주바가 있다면 종종 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끌벅적한 맥주바가 아니라 시원한 맥주와 정성 가득한 맛있는 안주를 맛보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가게가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당장 단골이 될텐데 말이죠.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무시무시하지도 않고 엄청난 반전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사람이 살아가는 그 속에서 있을수도 있을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는 느낌입니다. 아쉽게도 이 책의 작가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합니다. 이런 잔잔한 미스터리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기존에 출간된 이 작가의 책이라도 국내에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