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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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다니다보면 조그마한 손수레에 폐품을 싣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종종 보게됩니다.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서도, 볼이 터질듯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에도 할머니의 손수레는 쉬지 않습니다. 용돈벌이 삼아 쉬엄쉬엄하시는 일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하루에 버는 몇 천원이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분들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우리나라 은퇴한 노인 2명 중 1명이 빈곤층이라는 기사도 있었지만 그렇게 노년에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많은 이유는 뭘까요...

 

젊어서는 자식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한숨 돌릴 여력이 없었고 그 당시만해도 부모의 노후는 자식이 책임지는게 당연하던 시절이라 당신들의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분들이 많았을거라 짐작했었습니다. <비탈진 음지>의 첫머리를 읽고 나니 또 다른 이유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정래 선생님은 페품을 주워 팔아야하는 노인들이 6,70년대 '무작정 상경 1세대'라고 말합니다. 산업화가 한참이던 그 시절, 농촌 인구는 대거 도시로 이동합니다.

 

그들은 농부에서 도시빈민으로 전락했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40년이 지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거죠. '무작정 상경 1세대'에게 도시는 얼마나 팍팍하고 살기 힘든 곳이었을까요. 도시의 삶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서울토박이인 나도 도시가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아무것도 손에 쥔것 없고 비빌 언덕이 되어줄 아는 사람 하나 없던 그네들에게 도시에서의 삶이란 팍팍하기 이를데 없었을거라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비탈진 음지>의 주인공 복천 영감은 아내의 병으로 인해 빚을 지고 아이 둘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야반도주를 합니다. 남의 집 소를 몰래 팔아 겨우 마련한 돈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은 녹록치가 않습니다. 맨몸으로 시작할 수 있는 노동판에선 일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일꾼들에게 쫓겨나고 지게꾼으로 나서지만 다른 지게꾼들에게 몰매를 맞습니다. 돈을 몽땅 털어 시작한 땅콩 장사는 모조리 도둑 맞고 맙니다. 몸살을 앓고 난 복천 영감은 자리다툼이 필요없고 고향에서 낫갈던 솜씨를 살릴 수 있는 칼갈이를 시작합니다.

 

복천 영감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복천 영감의 진한 전라도 사투리가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는데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정겹게 다가옵니다. 복천 영감이 만난 도시 빈민들의 이야기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1973년에 중편으로 쓰여졌고 이번에 장편으로 다시 쓰였다는데 70년대 그 시절엔 그랬구나 싶은게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게 놀랍습니다.

 

40년이 흐른 지금도 도시 빈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전혀 없는 세상은 이상에서만 가능한 일일까요. 현실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없는 그런 시절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가의 작품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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