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식상한 느낌이 들긴하지만 '파리'는 어쩐지 여자들의 로망이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꿈을 꾸며 파리로 떠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것도 그런 로망을 부추기는 이유일겁니다. 너무 유명하고 너무 자주 거론되다 보니 나는 아직 가보기도 전에 질리긴했지만 '파리'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책은 쉬이 지나칠 수 없는걸 보면 꿈꾸었던 로망의 부스러기가 남아 있나봅니다. 처음엔 이 책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가 여행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파리에서 17년 간 살고 있다는 저자의 소개를 읽고나니 보통의 여행에세이가 아니겠구나 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난 파리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파리지앵의 삶의 풍경을 스케치한 에세이라고 저자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에세이였습니다. 프롤로그 부분을 읽어보니 이 책이 기존에 <파리지앵>이란 이름으로 출간됐었던 책을 새단장한 것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책을 구해서 비교해 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도서관에 책이 있더라구요. 곧 빌려다가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봐야겠습니다. 개정판이라는걸 알고나서 책 속에 들어 있는 사진들은 바뀐건가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풀리겠네요. 파리지앵이라고 말하면 왠지 시크하고 엣지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는데 이 책에서는 파리지앵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다양함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자와 남편 올리브의 이야기, 빠르고 복잡한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에서의 삶을 택한 오래된 친구 피에르, 문화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하며 오랜세월 탄탄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마크와 마크탐탐, 여유를 갖고 인생을 즐기는 벵상과 이자벨 부부, 싱글맘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카티.... 많은 파리지앵들을 만나다 보니 그네들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도 느껴지고 때론 공통점도 느껴집니다. 사진이 많아서 책을 읽는데 지루함이 없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는데 개인적인 사진들도 있는것 같아 상세한 설명은 생략했나 보다 하고 이해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정착하는 삶은 겁많은 내게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상상을 종종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