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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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겨울 코트를 껴입고 무언가 가득 들어있는 쇼핑백과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노숙자를 얼마전 거리에서 보았습니다. 다른때 같았으면 어쩐지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했을텐데 그 사람은 창 밖으에 있고 나는 창 안에 있어서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창'이라는 안전망이 있다고 느껴져서인지 그 사람을 슬쩍슬쩍 쳐다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사연에 있기에 지금 저런 모습으로 거리를 배회하는걸까. 어떤 생각을 하고 거닐고 있는걸까. 저 사람에게는 가족이 없는걸까.

 

그 사람을 가만히 보고있자니 쓸데없는 호기심이 몽글몽글 솟아납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내가 생각하는것만큼의 사연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다보니 거리로 나오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노숙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는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엄청난 부자였는데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둥, 부인과의 불화로 모든것을 버리고 거리로 나왔을거라는 둥, 대기업의 후계자인데 세속적인 '부'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왔을거라는 둥...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에서도 노숙자였던 한 남자가 나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노숙으로 전국을 떠돌던 남자가 원하진 않았지만 고향 마을로 되돌아 옵니다. '개백정'이라 불리던 아버지와 단 둘이 살 던 무허가 판자집은 사라지고 원룸 '샹그리라'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검을 쓰는 날렵한 노인을 만납니다. 그 노인은 '샹그리라'의 주인이고 사람들에게 '이사장님'이라 불립니다. 얼굴은 주름살 투성인데 벗은 몸은 근육이 자리잡은 청년의 것인 신비한 노인은 남자를 '샹그리라'의 관리인으로 채용합니다.

 

자신의 과거가 흐릿하기만한 남자는 눈썹 끝의 보라색 점 하나만을 기억하는 소녀를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남자의 얼굴은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는데 그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밝혀집니다. '샹그리라'에 살고 있는 이사장님, 알수 없는 두 남자, 맹인 안마사 아가씨, 젊은 순경 등과도 남자는 조금씩 얽혀갑니다. 그 남자의 과거엔 무슨 일이 있었고 '샹그리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요.

 

이 책은 등단 39년을 맞은 박범신 작가의 39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 분야에서 40여년을 활동한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교단을 떠나면서 새로운 작가 인생을 시작하려한다는 박범신 작가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앞으로 출간될 박범신 작가의 글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앞에 설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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