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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시절로 기억하는데 할머니와 부모님은 가끔씩 내게 대학에 가서도 데모하고 그러면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직 대학생이 되려면 몇 년이 더 있어야 하는 내게 그런 당부를 하셨던걸 보면 할머니와 부모님의 걱정이 컸던 이유도 있겠지만 대학생의 데모가 그만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일겁니다. 그 시절은 학생들을 가만히 공부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요즘은 화염병이나 최루탄 등이 보이지 않는 촛불시위나 평화로운 행진 등으로 시위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80년대만 해도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시위는 그야말로 전쟁을 불사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밤낮 없이 학생들이 시위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고 강경진압, 고문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민주화를 요구하며 분신하는 대학생들도 왕왕 있었으니 부모님들의 걱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 부모님들의 염려와는 무색하게 내가 대학에 갔을땐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진 후였습니다. 크게 시위하는 일도 없었고 가끔 학생회에서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는 정도였는데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더라도 비겁한 나는 뒤에 물러나 있으면서 자괴감에 빠졌을것만 같아서 그 시절을 빗겨간게 다시 생각해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내 청춘의 감옥>은 그런 처절했던 시절을 보낸 이의 유쾌한 기록입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두 차례 감옥살이를 했던 저자의 경험을 쓴 글인데 내용이 내용인지라 처음엔 비장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곧 푸푸거리며 웃고 말았습니다. 힘겨웠을 감옥살이를 어쩌면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냈을까요. 이런 징역살이라면 할 만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언뜻 들 정도였으니 말이죠. 끈을 이용해 옆 방 사람과 물건을 주고 받거나 종이를 이용해 각종 가구를 만든 일, 난로가 있는 겨울엔 한정된 재료로 각종 찌개를 끓여 먹은 일, 환갑을 맞은 선배를 위해 감옥 안에서 술을 빚은 일... 교도소가 이렇게 자유로운가 싶게 재미있는 일화가 많았습니다.
물론 교도소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겠지요. 그럼에도 이 책이 유쾌, 발랄한건 저자의 밝고 유머러스한 성격이 크게 작용했을거라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중간중간 각주가 필요한 사항은 뒷부분에 따로 설명을 곁들였는데 차근 차근 읽어가다 보니 치열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무자비한 횡포, 군부독재에서 벌어졌던 탄압과 공포정치,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뇌와 방황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회에 대해, 정치에 대해, 개인의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