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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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민규 작가를 처음 만난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었다. 통통 튀는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하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괜찮은 책이었다. 그 후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 책에 대해 좋은 소문을 들은터라 기대를 잔뜩하고 읽었는데 첫느낌은 예전에 읽었던 박민규가 맞나 하는 생각이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기엔 느껴지는 분위기가 내겐 너무 달랐다. 나만 그랬던건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는 동안은 눈덮인 하얀 설원을 혼자 묵묵히 걷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눈발이 휘날리는 끝없는 새하얀 설원을 걷다가 결국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호수를 발견하고 벤치에 앉아 햇살바라기를 하는 느낌. 이 책은 이상하게 다 읽고 난 후에 자꾸만 생각이 났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즐겁기 보다는 고행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책을 덮고나니 새록새록 떠올랐다. 박민규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꼈고 다시 한 번 그 힘을 만나보고 싶었다. 제법 묵직하게 그의 단편이 묶여 나왔다는 소식은 반갑고 설레였고 이번엔 어떤 느낌을 주려나 궁금하기만 했다.

 

<더블>은 생김새부터 남다르다. 예전 LP판을 생각나게 하는 side A, side B라는 타이틀을 단 두 권의 책으로 묶여있는데 그 사이에는 이라는 표제를 단 얇은 책자(화집)가 들어있는데 마치 LP판에 들어있던 앨범을 소개하는 속지같다. 이 얇은 화집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강렬하고 개성넘치는 일러스트와 짤막한 박민규 작가의 글들이 멋지게 어울려서 이 얇은 화집을 보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더블>은 한 권에 아홉편씩의 단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18편의 단편들 하나하나 작가의 기발하고 독특한, 그래서 재미있는 상상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첫사랑의 그녀를 요양원에서 만나 마음만은 청춘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낮잠>, 잘나가던 세일즈맨이 영업이 부진해지고 성생활도 원활치 않아 급기야 아내는 딜도를 장만해서 충격에 빠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서울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하얀미확인 물체의 비밀을 알려주는 <아스피린>.... 한편 한편이 기발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몰입할만하면 이야기가 똥강똥강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가끔정말 괜찮은 단편을 읽을때면 어지간한 장편보다 더 흠뻑 빠지게 된다. <더블>도 나를 몰입하게 만든 멋진 단편집이었다. 한 편, 한 편 읽어내려가면서 다음에는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맛좋은 단편을 만난것 같아 기뻤다. 박민규라는 작가는 만나면 만날수록 궁금해지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흥미로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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