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모든 날들 - 둘리틀과 나의 와일드한 해변 생활
박정석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란, 서울을 벗어나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시골엔 친척집조차 없는 내겐 시골에서 살고싶다는 꿈이 있다. 너무 외딴집은 무서우니까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그런 집에서 비가 오면 비를 보고, 눈이 오면 눈을 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색깔을 분명히 느끼면서 살고픈 꿈이 있다.

 

마당에는 들꽃과 잔디를 심어 돌보고 한켠에는 고추나 상추를 키워 밥상에 올리고, 감나무나 자두나무를 한 두 그루 심어 따먹고, 마당에 젖은 빨래를 탁탁 털어 널고는 햇살에 뽀송뽀송하게 말려보고 싶다. 그 빨래에선 세제냄새가 아니라 햇살 냄새가 나겠지. 볕이 좋은 날엔 사랑하는 사람 손을 잡고 가까운 산이나 들을 어슬렁 어슬렁 걷고 싶고, 마당 한켠에서 하염없이 비오는 소리를 듣거나 눈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젤로 하고픈 일은 마당에 넓은 그네의자를 놓고 무릎담요 덮고 앉아 풀냄새, 나무 냄새 맡으며 해가 질때까지 책을 읽는거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책읽기,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책읽기, 숲 속 나무그늘 아래서 책읽기, 자연 속에서 책읽기.... 여행다니며 틈틈이 경험해 봤던 행복한 책읽기를 시골에 살면 매일 할 수 있을거란 기대로 시골살이에 대한 나의 동경은 커져만 간다.

 

이런 얘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면 우리 엄만 한마디 하신다.

니가 시골에 살아보지 않아서 그래....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시골 산다고 그러니....

마당 가꾸려면 손이 얼마나 가야하는지 알아.... 게으른 니가 그런걸 한다고?

 

어쩌면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시골에 살고싶은걸....

시골살이가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녹록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하고픈 일들을 하려면 그런 수고스러움은 감수할 수 있다는 각오다.

 

시골에서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언제쯤 올지 모르지만 종종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갖고 있는 책들만 10여권이 되는데 <바닷가의 모든 날들>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책이었다. 표지 사진만으로도 마음은 콩닥콩닥거린다. 내가 꿈꾸는 모습이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강아지와 함께 책을 읽는 사람. 비어있는 의자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겠지...

 

바닷가 집에서 몇 달간 세를 살다가 직접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저자의 용기가 부럽기 그지없다. 나처럼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녀가 이렇게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걸 보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불끈 솟았다. 이제 엄마에게 반박할 수 있는 근거와 용기가 생겼다.

 

기대했던대로 책은 나를 매료시켰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속초, 강릉이 아니라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동해시의 어달리여서 읽는동안 더 행복했다. 오랜만에 찾은 정동진의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하고 돌아서는 길에 우연히 들렀던 옥계와 금진. 그 길을 따라 무작정 달리다 만난 동해시... 그렇게 우연히 만난 동해시의 어달리에 나는 반하고 말았는데 그곳이 이 책에 등장하니 너무나 반가웠다.

 

책을 읽으면서 남겨진 페이지가 줄어가는게 아쉽기만 했다. 내가 살고픈 곳에서 살고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싶었나 보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냉철하게 판단할 눈을 잃었는지 모른다.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있는, 어쩌면 조금은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행복해 보이는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내 눈에 콩깍지를 씌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부디 그녀가 <바닷가의 모든 날들>의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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