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박서양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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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미리 한계를 정해놓고 나의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생각만해도 답답하고 또 답답해진다. 내가 하고픈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도전조차 해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을테고 신분제약으로 인해 꿈을 꿀수도, 꿈을 펼칠수도 없었던 시절에는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가장 천대받고 멸시당하던 최하층의 신분인 백정의 아들인 한 남자가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책을 읽기도 전에 내 마음을 콩닥이게 만들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시련을 극복해 내는 강인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거라는 사실이 책을 손에 쥔 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도저히 어찌해볼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흐트러진 내 마음도 다잡아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논픽션'이 아니라 '팩션'이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던 '박서양'이라는 실존인물을 등장시키지만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덧붙이고 재구성했다고 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본 실존인물 박서양은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될 때까지 10여 년을 백정으로 살았고 제중원에서 공부한 뒤 조선에서 교편을 잡고 의사로서 살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간도에 가서 병원을 열고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살았고 고국으로 귀국한 뒤 6년 후에 눈을 감았다고 한다.

 

소설 속의 이야기도 실제 박서양의 일생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백정의 마을에서 고단한 삶을 살던 박서양이 미국 의사의 집에 머물게 되고 제중원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를 괴롭혔던 것은 어려운 의학 공부만이 아니어서 자신을 여전히 백정의 아들로 보고 같이 공부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치료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때로는 집에 들이는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의 편견과도 싸워야했다.

 

박서양이 그런 편견의 시선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졌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쓰는게 좋은 소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강들의 탐욕 속에서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상처받았던 대한제국의 이야기는 마음은 아프지만 흥미로웠다. 박서양의 인생과 그 시대의 아픔이,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의 아픔이 조금 더 유연하게 섞여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인간 박서양'을 만나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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