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미술관
이은 지음 / 노블마인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한동안 그림과 관련된 책에 꽂혀서 마구잡이로 읽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읽고도 저장해두지 못하는 나쁜 머리 덕분에 그 책들을 읽는것으로 그림에 관한 지식을 많이 얻지는 못했지만 그림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 만큼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은 들어가기 쭈뼛거리게 되는 화랑 나들이도 조금은 뻔뻔한 얼굴로 드나들게 되었다는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면 어떠냐,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림을 보면 되지... 그런 뻔뻔함.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예술에 있어서 표절과 패러디의 경계는 어디일까. 자로 잰 듯 명확한 기준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표절 문제는 언제나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킨다. 이 책 <수상한 미술관>에도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평론가와 자신의 작품은 패러디라고 주장하는 화가가 등장한다. 과연 독자들은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미술평론가인 김이오는 어느날 아침, 집안에 아내가 없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가방 속에서 울리는 낯선 핸드폰으로 아내를 납치했다는 낯선 남자의 전화를 받는다. 김이오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이라고 몰아세운 평론때문에 화가인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됐다는게 그 남자의 주장이었다. 자신이 지시하는대로 미술관에 가서 자신이 내는 문제를 모두 풀면 아내를 살려주지만 지시한 시간에 미술관에 도착하지 않거나 문제를 틀리게되면 아내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다.

 

문제들을 풀며 '예술에 대한 시각과 세상을 보는 김이오의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아 주겠다는게 낯선 남자의 설명이었다. 김이오는 주어진 시간에 화랑에 도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미지의 남자가 내는 문제를 하나씩 풀어간다. 그 문제들은 유명한 화가가 영향을 받거나 패러디한 작품들에 관련한 문제들이었고 미지의 남자는 그 문제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은 결코 표절이 아님을 주장하는듯 하다. 김이오는 마지막까지 모든 문제를 풀어내어 아내를 구할 수 있을까.

 

미술과 사진을 전공하고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할만큼 미술과 깊은 관련이 있는 소설이었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반가움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이 영향을 받은 작품, 혹은 패러디 했다고 볼 수 있는 작품들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눈이 무척 즐거웠다. 고흐와 마네가 일본 미술을 좋아했단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미술과 추리소설.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었다. 이은님의 전작들을 읽고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 책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그림 관련된 책도, 추리소설도 좋아하는 내게는 황제의 밥상처럼 푸짐하고 맛났던 책이었다. 이제 그의 다음 책을 다시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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