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형, 탐정이 되다 ㅣ 인형 탐정 시리즈 1
아비코 타케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작품을 처음 만난건 <살육에 이르는 병>을 통해서였다. 그 책은 19세 미만 구독불가의 책으로 표지마저도 으스스하다. 내 친구는 지하철에서 그 책을 펼쳐들고 읽자니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여 표지를 씌워서 들고 다니기도 했단다. 19세 구독금지를 당할만큼 그 책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잔인하다라는 느낌을 넘어서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듯해서 정말 오랫동안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만들었었다.
그런 충격적인 만남을 가졌던 작가가 코믹 탐정 미스터리물을 쓰기도 했다는 자체가 내게는 놀라웠다. 극과극은 통한다고 하더니 어두움과 밝음이 통하는걸까. 그렇게 어둡고 침침한 내면을 들여다 보던 작가가 코믹한 이야기를 쓴다면 과연 어떤 소설이 될런지, 혹시 그런 코믹함이 이 작가의 진정한 색깔은 아닐런지 하는 이런저런 궁금증을 갖고 <인형, 탐정이 되다>를 읽기 시작했다.
유치원 교사인 세노오 무츠키는 유치원에서 와서 복화술 공연을 하던 토모나가 요시오에게 호감을 갖게된다. 원장의 부탁으로 요시오의 집에 찾아간 무츠키는 요시오와 함께 복화술 공연을 하는 인형 '마리오'의 특별한 능력을 알게된다. 인형 마리오가 요시오의 또 다른 인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이다. 믿기힘든 일이지만 눈 앞에서 요시오와 마리오의 대화를 목격한 무츠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그런 그들 앞에 뜻밖의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게 된다. 이 책에는 4건의 사건이 다뤄지는데 그 시작은 유치원에서 키우는 토끼들에게 벌어진 이상한 일들이었다. 그것을 마리오가 해결하게 되면서 무츠키는 그런 마리오의 추리력을 인정하고 다음에 맞닥뜨리는 사건들은 마리오의 힘을 빌려 해결해 나간다. 요시오의 공연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공연과 관련된 살인사건, 그리고 마지막은 마리오의 실종사건.
이 책은 '인형 시리즈'의 첫 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치 등장인물들이 살짝 소개되어지는 듯 잠깐씩 등장하는데 다음 이야기들에서는 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것 같다. 뒤를 이은 '인형 시리즈'에서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무츠키와 요시오 둘의 러브라인도 좀 더 발전되어 가지 않을까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는 아쉬움이 없을 추리소설이지만 내게는 조금 아쉬웠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전해듣는 이야기로만 추리를 하는 인형탐정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비코 다케마루의 전작이 워낙 강해서 이 소설이 조금 밋밋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보니 <살육에 이르는 병>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 어두운 심연 속으로 다시 한 번 빠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