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짧아서 군더더기 없는 소설도 좋지만 언제인가부터 두툼한 책들을 좋아하게 됐다. 분량이 많은 책들은 진행이 느린 경우가 많다. 천천히 느리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이야기에 젖어들게 된다. 천천히 물든 만큼 진하고 오랫동안 물들어 있게된다. 그래서 나는 두툼한 책이 좋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천사의 게임>도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이다. 두 권을 한 손에 버겁게 쥐고나니 읽기도 전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의 이전 작품 <바람의 그림자>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 책의 출간이 더없이 반갑고 맛있는 밥상을 앞에 둔것처럼 보는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과연 이 책은 어떤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아 주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20년대 스페인 바르셀로나. 다비드 마르틴은 아들이 책을 읽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아버지와 어린시절을 보냈다. 참전의 고통에 허덕이는 아버지와 가난과 어머니의 부재로 불행했던 다비드를 '셈페레와 아들' 서점의 주인 셈페레는 책을 마음껏 읽게 해주고 책 선물을 해주기도 하면서 따뜻하게 품어준다. 아버지가 경비로 근무하다 괴한의 총격으로 살해당하자 다비드는 신문사의 사환으로 일하면서 성장한다.

 

다비드의 글 솜씨를 눈여겨 보던 대부호 페드로 비달의 추천으로 신문사의 기자로 일하게 되지만 동료들의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둔다. 버려진 저택인 '탑의 집'으로 이사하고 선정적인 소설을 가명으로 출간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다비드에게 베일에 싸인 인물 코렐리는 거금을 제시하며 자신이 원하는 책을 써줄것을 제안한다.

 

다비드는 자신이 뇌종양으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자신의 이름을 건 소설을 발표하지만 냉담한 반응을 받는다.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던 크리스티나가 비달과 결혼하자 절망에 빠진다. 그는 코렐리의 제안을 수락하고 책을 쓴 준비를 하다가 '탑의 집'의 이전 주인과 코렐리 사이에 무언가 있음을 알게되고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팽팽한 활시위처럼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많은 페이지들을 언제 다 넘겼나 싶게 몰입하게 만들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사건들은 촘촘히 얽혀 있어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이야기의 꼬리를 놓칠것만 같아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은 등장인물들이다.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하는 주인공 다비드, 그가 사랑한 여인 크리스티나, 다비드를 좋아하지만 연적이 될 수 밖에 없는 비달, 다비드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셈페레, 다비드를 엄마처럼 돌봐주는 어린 소녀 이사벨라. 그 밖의 등장인물들도 모두 매력적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을 겨우 두 번 만났지만 나는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신경을 팽팽하게 긴장하게 만들고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어두운 분위기가 나를 매료시킨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저절로 펼쳐졌는데 조만간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물론 나는 영화 보다는 그의 다음 책을 더 기다리고 있다.

 

"네가 보고 있는 각각의 책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어. 그 책을 쓴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도 가지고 있어. 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가 그 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릴 때마다, 그 책의 영혼은 커지고 강해지지." (2권-p.3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