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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펄프픽션
이강훈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부터 부쩍 일본 소설을 많이 읽게 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겠다는 알찬 꿈을 갖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것도 일본 작가들이 쓴 책과 만화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독학으로 하는 일본어 공부는 만만치 않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다 가끔 알아듣는 문장이 나오면 너무나 반가워지는 기쁨을 알게 해 주기도 했다. 알면 알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묘한 느낌의 일본이 언젠가부터 내게 매력적인 나라로 다가왔다.
일본에 대한 관심은 관련 서적이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었고 특히 이 책의 표지는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노란 표지의 책에 나 있는 문으로 걸어들어가는 정장입은 토끼 신사의 모습은 마치 책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상상을 하게 했다. 저 노란 책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 사뭇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자신이 쓴 책에 'Pulp Fiction'이란 제목을 붙인, 조금은 겸손한 작가 이강훈씨는 10년차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풋내기 이야기꾼이라고 말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진들과 일러스트는 모두 그의 작품인데 자신의 글에 직접 그림을 그리니 제 3자를 거쳐 표현되는 것보다는 자신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4년 동안 도쿄를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다녀왔고 그곳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삶에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도쿄의 카페에서 만난 말하는 고양이 가츠오에 대한 이야기, 허름한 골동품 가게 주인 할아버지의 상상도둑 이야기, 시간이 급히 필요한 사람에게 시간을 빌려주는 신기한 여행사 이야기, 시모키타자와의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후기에서 저자는 사실과 환상의 경계에 대해 블로그에서 따로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는데 나는 확인해 보지 않을 셈이다. 그저 나 혼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테다.
나도 여행을 가서 가끔은 혼자만의 마구잡이 상상을 할때가 있다.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언덕 위의 조그만 집에 말하는 물고기와 함께 한 여자가 살고 있다는 상상한 적도 있고, 저 멀리 떠있는 아주 작은 바위섬에 아주 작은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는 상상, 푸른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는 내 발주위를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내게 말을 거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이 책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실은 내 일본 여행계획에 도쿄는 없었다. 서울과 비슷한 느낌의 복잡한 도시일거란 생각에 그다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복잡한 서울의 한 구석에 시간이 멈추어버린듯한 숨겨진 장소가 있듯 도쿄의 어딘가에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장소가 많이 있을것 같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어쩌면 상상을 도둑맞고 골동품가게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