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49세기.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훨씬 더 지난 미래의 지구 모습을 나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그리기가 힘들다. <둥근 돌의 도시>를 만나기 전에 책의 배경이 49세기라는걸 알고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궁금해 했었다. 하지만 은하계로 확대된 생활반경과 첨단 기기들이 등장하는 것을 빼고는 지금과 그다지 다를게 없다. 어처구니 없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정치인들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49세기의 모습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치듯 든다. 종교와 음악,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된 49세기. '선행과 사회보건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카르멜르는 '행성간 업무부' 장관의 아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행정부서들의 이름은 독특하기 짝이 없다. '선행과 사회보건부', '대외공격부', '행성간 업무부', '나쁜 환경부', '종교통제와 성 억제부' 등 대체 무슨 일들을 하는 기관인지 알쏭달쏭한 그 이름들이 기발하다. 카르멜르는 경사진 길을 보면 뛰지 않고는 못배기고 그 길의 끝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여느날과 같이 경사진 길을 마구 뛰어가고 있는 그 앞에 뛰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그 남자를 앞지르기 위해 카르멜르는 마구 달린다. 그런 과정에서 그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남자가 들고 있던 핸드백을 부여잡은 채로 차에 치이고 만다. 그 핸드백은 세계 대통령인 아나의 것이었고 카르멜르는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후로 그는 이상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고 평범했던 그의 일상은 남의 얘기가 되어버린다.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책은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종종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에 혼자 웃기도 하고 21세기나 49세기나 별로 달라진게 없어 보이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혀를 차기도 했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뭐가 뭔지 구분이 안가는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살짝 추리소설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런 분위기가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책장을 덮고 나서 이 책이 추리소설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작가 자신이 주석을 길게 달아서 독자가 행여 이야기를 잊었을까봐 주석 전에 꺼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지를 않나, 이야기의 중간에 작가가 직접 등장하지를 않나, 에필로그가 몇 번이나 등장하지를 않나... 작가의 톡톡 튀는 성향이 책의 전반에서 느껴진다. 책을 읽는 동안은 내용이나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심심할 일은 없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