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에게 법원은 가급적이면 멀리해야 할 곳으로 여겨진다. 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급적이면 법원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잠깐 돌려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법이란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처럼 선량한(?) 보통 사람들에게 법원은 든든한 곳이어야 맞는게 아닐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에 호소하고 법은 나를 지켜줄거라는 확신이 내게는 왜 없는걸까.
한 때 '석궁 테러'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테러'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사건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의 주장처럼 '석궁 시위'로 부르는 것도 그다지 탐탁치 않으니 '석궁 사건'이라 통칭해야겠다. 석궁 사건은 판결에 불만을 가진 대학교수가 석궁을 들고 담당 판사의 집앞에 찾아가 다툼을 벌인 사건으로 알고 있었다. 그 사건을 접하고는 그저 '얼마나 억울했으면 판사를 찾아가 그런 일을 벌였을까'하고 가볍게만 생각했었다. 세상에는 그 일 말고도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내게 '석궁 사건'은 그냥 그렇게 잊혀졌다.
<부러진 화살>을 마주하면서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진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함이 컸다. 어쩌면 한 때 이슈가 되었던 사건의 뒷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허탈하게 만들었으며 무기력하게도 만들었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였다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이토록 졸렬할 수 있음이 나를 분노케 했고, 법을 집행 한다는 사람들의 위법행위들이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으며 선하게만 산다고 해서 법이 꼭 내 편이 되주진 않음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조교수였던 김명호 교수는 1995년 대학별 입학 고사 수학 문제 채점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출제된 문제의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학교측에서는 조용히 덮고 넘어가길 바랬고 잘못된 문제에 대해 모범답안을 만들고 부분 점수 채점 방식을 택하고 김 교수를 채점 위원에서 빼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그 후로 김 교수는 당연시 됐던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고 조교수 재임용에서도 탈락되고 만다.
곧바로 김 교수는 법원에 재임용 탈락이 잘못되었고 부교수로 승진 임용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김 교수는 해외로 나가 10년의 세월을 힘겹게 보내고 귀국해 다시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또 다시 받아들여 지지 않고 판사가 법전에 적힌 그대로 판결하지 않았다며 석궁 사건을 벌이게 된다. 김 교수는 몸싸움을 벌이다가 담당 판사가 상처를 입은거라 주장하고 판사는 김 교수가 자신을 겨냥해 석궁을 발사 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법정에서 있었던 변론들을 제법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읽고 있자니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유죄를 입증해야 할 검사들은 명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할 판사는 이미 김 교수의 유죄를 확정하고 판결에 임하는 듯이 보인다. 물론 김 교수가 석궁을 들고 담당 판사를 찾아간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물어야 겠지만 그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음에도 살인미수의 혐의를 두는 것은 너무 한 처사 아닌가. 김 교수에게 살인 할 의도가 있었음을 증명할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 말이다.
김 교수측이 신청하는 증인은(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증인들이다) 받아들여 주지 않고, 중요한 증거품인 사라져 버린 부러진 화살에 대한 부분을 조사해 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피해자의 옷 등에 묻은 혈액이 누구의 것인지 검사해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벌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너무한다는 말이 끊임없이 입에서 맴돌았다. 더구나 판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던 김 교수는 4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지금 내가 쓴 서평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시종일관 감정은 배제하고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김 교수 이외에도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법 피해자들을 만난 인터뷰도 실려 있고 '석궁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 책으로 처음 만났지만 저자의 또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물론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패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법부에 불신을 보일 때에는 불신하는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 중에 대한민국 사법부는 삼성에 죄가 없음을 인정하고 삼성의 손을 들어 줬다.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옳은 판결이라 생각했을까. 곰곰히 생각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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