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도 괴롭지만 그보다 더 짜증나는 날은 후덥지근한 날이다. 습도가 높아서 몸은 끈적거리고 샤워를 하고 나와도 산뜻한 느낌이 나지 않는 그런 여름날은 정말 견디기가 괴롭다. 이런 날이면 시원한 계곡물에 발담그고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 그 어떤 값비싼 호텔 패키지의 휴가와도 바꾸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호사는 누리기 쉽지 않고 그저 욕조에 발담그고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내게 그런 호사를 누릴 기회가 자주 오고 있다. 한 달에 2~3번... 짧게는 당일, 길게는 3박 4일의 여행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겨 여행길에 오를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가져갈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행방불명자>를 들고 복잡한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향하니 바닷물에 발 담그고 책읽는 호사를 누릴 생각만으로도 설레였다.

 

비가 올지 모른다던 강원도는 다행히(?)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무더웠고 삼척의 한적한 바다를 찾아가 바위에 걸터앉아 바닷물에 발 담그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에메랄드빛 바다에 발을 담그고 읽는 추리소설은 꿀맛이었다. 내가 책에 몰두해 있는 동안 함께 간 동행은 성게를 잡겠다고 바다에서 한참을 첨벙거리더니 질렸는지 그만 일어나자고 조른다.하지만 책에 완전 몰입해 결말이 궁금해진 나는 기어코 다 읽고 가겠다 버티었고 결국 다 읽고나서야 바닷물에 퉁퉁 불어버린 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의 시작부터 나를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대체 '그'가 누구고 '그녀'가 누구인건지...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고 나니 책읽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미스터리 소설은 쉼없이 읽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책의 끝을 향해 마구 달렸다.

어느날 차려진 아침 식사를 고스란히 남기고 사라져버린 일가족 4명. 그 사건의 뒤를 쫓는 르포라이터 이가라시 미도리. 그리고 우연히 여성을 노린 습격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한 청년. 그들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복잡하게 뒤엉킨 사건은 내 머릿속에서 점점 더 뒤엉켜버리고 만다. 오리하라 이치... 이렇게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줄 짐작했다.

 

책의 마지막부분이 다가올 때까지도 나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건지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그 사람이 이 사람인지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해가면서 책을 읽었음에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내가 또다시 속았다는걸 깨달았다. 다시 한 번 책의 맨 앞장부터 훑어보자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오리하라 이치의 책은 재독할 때의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다. 이미 결말을 알고 읽어도, 아니 결말을 알기에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때문에.

 

그의 책 <도착의 론도>를 재미있게 읽은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책을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는건 어쩔수 없었다. <도착의 론도>에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정신 없는 충격을 받았던터라 이 책이 조금은 덜 충격적이어서 <도착의 론도> 보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오리하라 이치의 또다른 책이 읽고 싶어질 만큼 흥미진진했다. 여름이 다 가기전에 그의 책들이 출간되기를 기다려본다. 내가 맛나게 읽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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