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공책 - 부끄럽고 아름다운
서경옥 지음, 이수지 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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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라는 말은 언제나 마음 한 켠을 찡하게 만든다.

어느누가 자기 엄마를 좋아하지 않을까마는 나는 가끔 남자친구에게 마마걸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만큼 엄마를 좋아한다. 무슨 유행가 가사처럼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 울엄마.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지 내기분이 엉망일 땐 괜시리 엄마에게 부르르 화를 내고만다. 그러고는 후회가 들어 금세 쪼르르 달려가 '엄마, 미안해' 하면 '뭐가~'하고 웃어주는 울엄마.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그랬듯, 내가 엄마에게 그랬듯, 이 다음에 내 딸도 나에게 그럴테지... 엄마에게 진 빚을 딸에게 갚는게 세상 딸들의 업보인가보다.

 

내 마음을 울리는 영원한 테마 '엄마'가 제목에 떡하니 들어 앉아있는 <엄마의 공책>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엄마가 글을 쓰고 딸이 그림을 그렸다는 책소개가 내 마음을 잡아 끈다. 그림솜씨도 글솜씨도 없는 나로써는 부럽기가 그지 없다. 엄마의 공책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얼마나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을 울릴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긴다. 

 

저자와 친정엄마, 시어머니 그리고 딸. 때로를 친정엄마의 엄마 이야기까지 저자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아흔의 나이에도 새로운 배움에 몰두하시는 친정엄마의 이야기는 아직은 젊은 내게도 느끼는 바가 많았다. 너무 늦은게 아닌가 조바심하고 있는 내게 '지금 시작해도 늦지않아'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듯하다.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와 함께 상상 속에서 하는 쇼핑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기대했던 따뜻함은 느끼지 못했다.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들은 조금 더 소박하고 끈끈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조금은 화려하고 세련되게 느껴진다. 소박한 시골 밥상을 기대하고 들어간 밥집에서 만난 격식 갖춘 한정식 한 상을 받은 느낌이랄까. 명문가였던 집안 이야기나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이야기, 잘나가는 주위 사람들 이야기... 

 

어릴적 피아노 레슨을 받았는데 형편이 어려워 큰집에 있는 피아노를 쳤다는 이야기는 좀 뜨악했다. 1950-60년대임을 감안하면 큰집으로 피아노를 치러가는게 어려운 형편이랄 수 있을까... 일부러 그렇게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너무 아름답고 좋은 쪽만을 보여주려고 한게 아닌가 싶다. 때로는 힘들고 부끄러웠던 이야기들이 사람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책의 중간쯤 약간 두꺼운 종이에 그려진 딸의 그림은 색연필로 쓱싹쓱싹 그려낸듯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그린 딸은 미국에서 전시회도 하고 그림책으로 상도 받았다고 한다. '엄마를 위한 그림책'이라는 글이 앞장에 적혀있길래 또 하나의 독자적인 그림책인줄 알았는데 엄마의 이야기를 삽화처럼 그려낸거였다. 차라리 딸의 그림들이 엄마의 이야기 속에 한 장 한 장 삽입되어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그랬다면 이야기과 그림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아직 읽지 못한 이야기의 그림들은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보니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저자가 좋아했다던 반닫이와 재봉틀, 반짇고리들은 나도 평소에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이어서 귀가 쫑긋해졌다.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인사동 골목을 걸어봐야겠다. 부디 인사동 골목에서만큼은 내 마음에 든 한국적인 것들이 'Made In China' 딱지를 달고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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