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밀려있는 방학숙제처럼 고전은 내게 읽어야만 하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지는 고전들... 그래서인지 고전읽기는 점점 뒤로 밀리고만 있었다. 어떤것이 훌륭한 고전인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는 있지만 막상 읽기에는 망설여지는 고전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을 손에 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내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읽다가 포기하면 어떻게 하나...'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고전을 다루고 있으니 내용도 만만치 않을 이 책을 지치지 않고 읽어낼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이 책은 영화 평론가이자 저술가인 저자가 컬럼비아 대학 학부생들을 위한 교양과목인 <현대문명>과 <인문학과 문학> 강좌를 1년 동안 청강한 기록이어서 한 단원씩 끊어 읽어도 괜찮을듯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2~3 단원씩만 읽어나갔다. 그렇게 천천히 읽어나갔음에도 내가 이 책의 전부를 내것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다만 고전에 대한 생각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이 씌여진 1990년대에는 1920년대에 개설되어 대학생이라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할 과목으로 자리잡은 인문학 강좌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서양 백인남성' 중심으로 편성된 독서목록에 대한 다양한 계층의 비판은 일정부분 받아들여져 독서목록은 조금 수정되었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덴비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비판하진 않지만 인문학을 예술과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파에서는 애국적인 방패로 삼으려 하고 좌파에서는 서방에 대한 패권적 찬양으로 매도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대해 분노했다. 위대한 책은 그저 위대한 책으로 받아들여야지 어떤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서는 안된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이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작품에 대한 분석만 있는게 아니라 마치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어려워질만 하면 데이비드 덴비의 개인적인 감상과 일상의 이야기도 곁들여져 있어서 나의 긴장을 풀어주곤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인문학의 매력에 얼마나 깊게 빠져들었는지 고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진다. 고전을 읽으며 황홀해 하는 저자가 부럽기 그지없다. 또 한가지 부러운 것은 대학에서 고전에 대한 수업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들도 우리의 고전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 실린 위대한 책들은 내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책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이 책들을 전부 읽지는 못하겠지만 몇 권 정도는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들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데이비드 덴비의 강의 기록을  읽는다면 지금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될테니까. 우선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부터 시작해 봐야겠다. 내가 느끼는 것과 컬럼비아 대학의 강의실에서 데이비드 덴비가 느끼는 것이 어떻게 닮아있고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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