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 아니고 감동실화도 아닌 인문서로 분류될 수 있을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눈물을 참고 또 참았건만 결국엔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물론 슬퍼서가 아니라 감동적이어서 였다. 과연 이 책의 무엇이 나를 눈물을 흘릴정도로 감격하게 만든걸까.
이 책 <인간의 두 얼굴>은 EBS의 다큐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큐로 방송된 후 반응이 좋아서 다시 책으로 발간되는 경우가 요즘 자주 보이고 나도 몇 권 읽기도 했었다. 내가 읽은 책들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책들의 문체가 조금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책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래서 책에 몰입하기가 수월했다.
친구들과 커피 한 잔 앞에두고 누가 이랬다더라 누가 저랬다더라 하고 수다를 떨다보면 '어머, 어떻게 그럴수 있니', '나라면 안그랬을거야.' 하는 말이 나도 그렇고 친구들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는 뭐라고 확신할 수 없겠다 싶다. 스무 살 시절에는 이해 할 수 없었던 행동들을 지금의 내가 하기도 하는걸 보면 더욱 그렇다.
심리검사에서도 평범한 사람들로 분류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교도관, 한 집단은 죄수의 역할을 준다. 교도소와 똑같이 마련된 실험실에서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게 되고 첫날부터 진짜 죄수와 교도관처럼 돌변하고 만다. 죄수들을 향한 교도관들의 가학행위는 점점 심해졌고 2주를 예상했던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1971년에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했던 실험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이 실험 외에도 제작진이 실제로 했던 여러 실험들을 통해 상황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하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두려워졌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나 어떤 집단에서 가학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나와는 다른,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겼었는데 실은 나와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인간은 상황에 지배받을 수 밖에 없는걸까. 그렇다면 누구나 범죄자가 되는걸까. 제작진은 그렇지 않다는걸 다른 일례들로 얘기해준다. 지하철에 끼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전철을 움직인 경우, 쌓이는 쓰레기로 골치를 썩던 골목에 화단을 심어 깨끗하게 만든 경우, 물건을 부탁하고 자리를 비웠을 때 끝까지 그 물건을 지켜준 학생의 실험... 이 모두가 인간이 상황의 힘을 이겨낸 사례들이다. 이제 희망이 보여 내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평범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 지하철 선로에서 사람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 우리나라 지하철역에서 사람을 구한 많은 사람들, 막막하기만 했던 검은 바다를 깨끗하게 만든 태안의 자원봉사자들, 선행이 전염되는 예를 보여주는 사례들... 점점 내 마음이 벅차오른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용감한 사람들이 준 감동과 인간의 선함이 실현될 수 있을것 같은 기대감에 마음이 울컥한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사람들이 야박해졌다고 떠드는 사람과 언론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고 싶다. 따뜻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달라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전해달라고, 그러면 따뜻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거라고... 분명 그럴거라고...
우리는 모두 잠재적 영웅들이다. 상황의 거대한 힘을 뚫고 여기까지 오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그런 것이다. 비록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상황들을 변화시키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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