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내가 동화책을 읽고 있으면 어른들은 '책을 좋아하는구나. 아이구 기특하네.' 하신다. 그런데 내가 만화책을 읽고 있으면 똑같은 어른이 '숙제는 하고 만화책 보는거니?' 하신다. 요즘은 만화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어서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학습만화라는 이름으로 부모님들의 각광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내가 자랄때만 해도 만화는 공부의 적으로 간주됐었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내가 무얼 읽건간에 나무라는 일이 없어서 나는 자유롭게 만화를 읽곤했었다. 순정만화, 명랑만화, 코믹만화...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읽었고 지금도 여전히 만화를 좋아한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만화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어서 성인들을 위한 만화들도 많이 사랑받고 있다. 일본 만화에 눌려서 국내 작가들의 입지가 많이 좁아졌고 만화 출판계는 힘들다고 하던데 인터넷을 통해 연재되는 성인들을 위한 만화들은 많이 활성화 되어 있는것 같다.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는 경우도 이젠 흔한 일이 되었으니 만화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줄스 파이퍼가 이 책에 실린 만화들을 그린 5-60년대의 미국도 성인을 위한 만화시장은 그리 밝지 않았던거 같다. 이 책에 실린 <먼로>라는 작품을 완성해서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출간하자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하는걸보니... 출판사에서 그리 호응을 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큰반향을 일으켰고 1986년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만화가 좋은 이유는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는거 아닐까 싶다. <패셔넬라> 또한 쉽게 읽히고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예쁜 그림은 아니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나는 그림들과 조금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스토리가 가볍게 보아 넘길수 없게 만든다. 이 책에는 <패셔넬라>,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 <해롤드 스워그>, <조지의 달>, <외로운 기계>, <관계> 6편의 만화가 실려있다. 6편의 이야기가 어느 하나 아쉬움 없이 내게 "이봐~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하고 묵직하게 말을 건다. 한 편씩 읽을때마다 잠시 텀을 두고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줄스 파이퍼의 다른 만화들이 많이 있다고 하니 이 책에 이어서 또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어떤 무거운 책에 뒤지지 않을만큼 묵직한 물음을 던져주는 그의 만화를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마음이 거칠어지는 날에는 줄스 파이퍼의 만화를 보면서 뽀족해진 마음을 곱게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