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혼인 나에게 장애아에 대한 생각은 막연하기만 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는 관련없는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던것 같다. 어느덧 나도 남들이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훌쩍 지나고 나니 늦은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언젠가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자리잡고 있다. 차마 입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워 그저 혼자서 가끔 생각해보곤 하는 것. 만일 내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면..... 세상의 종말을 두 번 겪었다고 말하는 장 루이 푸르니에. 두 명의 아들이 남들과는 다른(그는 정상, 비정상 이라는 말을 쓰는걸 거북해한다) 장애를 갖고 세상에 태어난 일이 세상의 종말 같았다고 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하루가 다르게 등이 굽어가는 치명적인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마도 내가 상상하는것 이상으로 찢어질듯 아플것이다. 정말 세상의 종말처럼... 이 책은 결코 무겁다고 할 수는 없다. 시시껄렁한 농담하듯 가볍게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하하호호거리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책을 읽는동안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과 마음은 슬퍼진다. 저자가 농담처럼 하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 속에 감추어진 연민과 아픔이 내게도 전해온다. 감히 내가 안쓰러워 할 수도 없을만큼 아팠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이토록 담담하게 아픔을 웃음으로 말하는 그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가끔은 과하다 싶은 표현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슬하에 장애아를 두지 않은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비난을 받았을 표현들이지만 장 루이 푸르니에가 하는 말은 장애인 비하로는 들리지 않는다. 그 속에 무한한 애정이 담겨있다는게 느껴지기 때문일거다. 어쩌면 그는 아무렇지않게 말함으로 아이들의 장애를 아무렇지도 않은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던건 아닐까.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죄책감이 묻어나는 대목들이 눈에 띄어 안타까웠다. 어릴때부터 남들과는 다른것을 좋아하고 추구했던 그는 자신의 그런 점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아이를 갖게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듯하다. 저자의 상상이였지만 마튜와 토마가 '아빠는 남들과 다른걸 그리 좋아하더니 성공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무슨 안좋은 일이 생기면 이것 때문에 그랬을까, 저것 때문에 그랬을까, 내가 그랬기 때문에 벌 받은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하는 나에게 그 장면은 마음이 많이 쓰였다. 책을 덮고 나서 장 루이 푸르니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짧은 삶을 살고간 마튜도, '아빠 어디가?'라는 질문만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토마도 분명 당신 덕분에 조금 더 행복했을거라고, 더이상 자책하지 말라고... 전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다.